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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 만삼천원 -이철환 中./낭독-무광

갓바위 2020. 1. 3. 08:40
축의금 만삼천원 
이철환 中./낭독-무광

10년 전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가 보이지 않았다 
'이럴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리가 없는데...'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숨을 몰아쉬는 친구 아내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석민이 아빠는 못 왔어요. 
죄송해요...
대신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 
전해드리라고 했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뒤집어쓴 채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리어카 사과 장사이기에 
이 좋은 날,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굶어야 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천원이다 
하지만 힘들다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 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내겐 있으니까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를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친구여, 오늘은 너의 날이다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해남에서 친구가- 』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만원짜리 한장과 천원짜리 세장... 
뇌성마비로 몸이 많이 
불편한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데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할텐데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기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나는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버렸다
사람들이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 서서... 
축의금 만삼천원 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