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불교는 실천의 종교다

갓바위 2024. 1. 3. 10:16

 

불교는 실천의 종교다

유태교나 카톨릭, 이슬람교나 개신교 같은 셈족의 종교(Semitic Religion)의

경우는 그 신자들에 대해서 '믿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

기독교를 믿는 사람',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 '믿음이 좋은 사람'등과

같이 그러나 불교에 대해서 우리들은 좀 다른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불자들은 스스로에 대해서 '불교 하는 사람'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불교 하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나?", "불교하는 사람음 뭐가 달라도

역시 달라." 등등. 무심코 던지는 말이지만, 불교에 대해서 "믿는다."는 표현과

함께 "한다."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 이유는 많은 불자들이 불교가 단순한

믿음의 종교를 넘어선 '실천의 종교'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과 가르침과 스님이라는 세 가지 보물, 즉 삼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귀의를 다짐할 때 불자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이런 다짐을 삼귀의계(三歸依戒)라고 부른다. 삼보에 대한 귀의 여부는

불자와 불자가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러나 불자로서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믿음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불교의 실천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는 것만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시대에서 2,600여 년이나 지났을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는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유교적인 생활습관이 깊이 뿌리 내렸고, 외적으로는

8.15해방 이후 미국의 절대적인 도움 속에서 살아가면서 지독하게 서구화된

우리 한국 사회이기에, 불교를 실천하고자 할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참으로 난감할 때가 많다.

 

불교를 우리의 삶과 접목시키고자 할 때 마주치는 두 가지 장벽 가운데

하나는 조선시대 이래 우리 사회에 깊이 착근한 유교적 가치관과 관혼상제

의례이고, 다른 하나는 근대화 이후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온 서구의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이다. 스스로 불자라고 자부하지만 그 가치관과 생활습관은

유교적이고 마음속으로는 금전만능의 물질문명을 흠모한다.

 

진정한 불자라면, 자신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할 때 그 모두를 불교식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일거수일투족이

불교적이어야 하며, 그 해결 방안 역시 철저히 불교적이어야 할 것이다.

 

속칭 '덩달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실천의 길에서 불자들은 다른 사회단체나 이웃종교의 구성원들과

협력할 수도 있겠지만, 제 목소리를 낼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통념이나 이웃 종교의 가르침 가운데 부처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천성산 터널이나 4대강 사업에서 보듯이 다른 생명체를

대하는 태도의 경우, 비불자들의 생각은 불자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전통과 현대의 갈등, 남북통일의 문제, 바람직한 정치체제의 문제,

생명공학과 윤리의 문제 드등에 대해서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지침으로 삼아서 다른 누구보다 탁월한 해결책을 제시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 불교적인 결혼식은 어떠해야 하는지?

불교인들은 제사나 차례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불교적 사회참여란 무엇인지? 불전의 가르침을 지침으로 삼아

이런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모색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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