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과 불력
우리도 아미타부처님처럼
- 참선은 자력(自力)! 정토는 불력(佛力)! -
바라건대 보현보살 수승한 행원 我此普賢殊勝行
그지없이 뛰어난 복 회향하오니 無邊勝福皆回向
고해바다 빠져있는 모든 중생들 普願沈溺諸衆生
무량광불 극락정토 어서 가소서. 速往無量光佛刹
팔만대장경의 꽃은『화엄경』이다.
『화엄경』의 결론은「보현행원품」의 상기 게송이다.
보현보살의 수승한 행원으로 생기는 큰 복덕을 회향하여, 고해에
빠져있는 모든 중생이 속히 극락정토로 가기를 발원하는 것이다.
나아가『정토삼부경』은 물론이고
『대승기신론』에서도 궁극적으로 극락왕생을 권장하고 있다.
극락으로 가는 가장 쉽고도 빠른 방법은 염불이니, 결국 부처님의 일대시교는
염불법문의 주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원효대사와 의상조사가
사람들에게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도록 권장한 까닭이다.
법문이 비록 많을지라도 주요한 것은 오직 참선과 정토다.
참선은 자력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변한다.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변하는 현상이 있을 뿐! 결국 몸과 마음은 아바타요,
이 세상은 가상현실이다.
이렇게 관찰하면, 몸의 고통과 마음의 번뇌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아바타가 아파하고, 아바타가 번민하는 것이다.
나는 다만 관찰할 뿐! 이것이 일단 번뇌에서 해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론적으로 깨치기는 쉽다.
하지만 자기 것으로 만들어 계속 지켜나가기는 어렵다
.『능엄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신다.
“이치는 곧 단박에 깨침이라. 깨달음과 함께
(내가) 없어져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색·수·상·행·식) 차례대로 없어진다.”
간화선의 종장인 대혜스님도『서장』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여 이참정에게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부끄러운 마음을 내야 합니다.
종종 근기가 영리하고 지혜가 뛰어난 사람은 힘을 쓰지 않고
깨침을 얻어, 마침내 쉽다는 생각에 다시 수행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눈앞의 경계에 끌려 다녀서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면 미혹하여 돌아오지 못하고 도력이 업력을
이기지 못하니, 마구니가 그 짬을 얻어 결국 포섭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목숨을 마칠 때에 또한 힘을 얻지 못하리니, 천만번이라도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번에 ‘이치는 곧 단박에 깨침이라. 깨달음과 함께 (내가) 없어져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차례대로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행·주·좌·와에 절대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결국 깨치기는 쉬우나, 몸에 사무쳐 지켜가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평소에도 그럴진대 목숨을 마칠 때에 힘을 얻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영명 연수대사는「선정 사료간」에서 송한다.
“참선도 있고 정토도 있으면, 마치 뿔 달린 호랑이와 같아
살아서는 사람들의 스승이 되고, 내생에는 불조가 될 것이다.
참선은 있되 정토가 없으면, 열에 아홉은 길에서 어긋나니
중음신의 경계가 현전하면, 별안간 그것에 끌려가버린다.”
참선으로 해탈을 얻는 것은 마치 수영법을 익힌 것과 같다.
자기 혼자 작은 강을 건널 수는 있다.
하지만 급류가 흐르는 큰 강이나 바다를 건너기는 어렵다. 더구나 풍파가
몰아닥치면, 아무리 수영을 잘한다 해도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정토는 불력(佛力)을 겸한다. 그러므로 아미타불을 염하는 수행은 큰 배에
오르는 것과 같다. 불보살님이 장엄한 반야선을 타고 어떠한 고해바다도
쉽게 건널 수 있다. 혼자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도 함께 갈 수 있다.
몸과 마음은 아바타요, 이 세상은 가상현실이라 관찰하면
애착이 점차 줄어든다. 또한 바라밀명상은 자존감을 회복시켜준다.
이에 더하여 우리도 아미타부처님처럼 정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것이 아미타명상이다.
극락정토는 최상의 메타버스니, 이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좋다.
업생이든 원생이든 어차피 가상현실에서 아바타로 살아가야 한다면,
일단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정토를 체험하자.
그리고 인간정토를 발원하신 미륵보살님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또 다른 정토를 장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월호스님-
'卍 스님 좋은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정한 복이란 (0) | 2024.02.04 |
---|---|
생명의 가치 (1) | 2024.02.03 |
수행은 (1) | 2024.02.02 |
무애심 무애행 (0) | 2024.01.28 |
공이 무엇이고 무는 무엇인가 (0) | 2024.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