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의 결과
행위의 결과
나무뿌리가 튼튼하면 줄기가 잘려도 다시 자란다.
『법구경』
윤회의 주체인 업이란 무엇인가?
윤회의 주체가 업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 업 사상은 숙명론적인 가르침이라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일반적으로 업(業)이라고 하면 '죄, 곧 나쁜 행위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업은 결코 나쁜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업은 범어 Karman을 번역한 것으로 행위, 작용을 가리킨다.
폭넓게는 행위에 따른 과보(果報)까지도 포함시키고있다.
가장 기본적인 업은 삼업(三業)인데,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업을 짓지 않을 수가 없다.
살아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어떠한 행위와 연결되어 있고,
또한 어떤 형태로든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을 짓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업을 성질상으로 분류하면, 착한 행위인 선업과 나쁜 행위인 악업,
그리고 선도 악도 아닌 행위인 무기업(無記業)이 있다.
예를 들어 숨을 쉰다든가, 잠을 잔다든가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선악의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에는 다시 각기 그 작용이 바깥으로
나타나는 표업(表業)과 표업에 의해 일어나지만 바깥으로
표시되지 않는 무표업(無表業)이 있다.
어떤 행위를 하였을 때, 행위 그 자체는 그 장소에서
사라지지만 그 행위로 인한 결과는 남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누군가를 때렸을 때, 때리는 행위(표업)는 그 장소에서 끝나지만,
상대방의 맞은 곳이 아프다는 것(무표업)은 남아 있다.
바로 이 여력(餘力)은 다음의 업을 짓는 원인이 된다.
부처님께서는 "그대의 전생을 알고 싶은가?
그러면 지금 그대의 모습을 보라. 그대의 미래를 알고 싶은가?
그러면 그대가 지금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를 보라"고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업은 자신의 과거에 지어 놓은
행위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숙명론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지은 업〔因〕은 없어지지 않지만 연(緣)을 만날 때,
비로소 결과〔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섭씨 100도로 끓는 물을 팔에 붓는다면 우리는 당장
화상을 입게 되겠지만, 죽은 사람에게는 부어도 전혀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화(火)기운까지는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태울 수는 있는 것이다.
뜨거운 물〔因〕과 우리 몸 안의 따뜻한 기운〔緣〕이 서로 상응해서
화상을 입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업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선행으로
내 업을 좋은 방향으로 굴려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업 사상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충분히 자각하게 함으로써,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의 행위를 삼가게 하는 가르침이다.
어떤 절대자의 힘에 의해 조종되고 마냥 순응하는 운명론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얼마든지 개척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미래 지향적인 사상이 바로 '업 사상'인 것이다.
계환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