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깨달음은 둘이 아니고 하나다
수행과 깨달음은 둘이 아니고 하나다
죽을 몹시 좋아하는 어느 선사가 있었다.
어느 날 제자가 스승을 위해 특별한 죽을 만들어서 스승의 상 위에 올려놓았다.
"보아하니 색다른 죽 같구나."
선사는 얼굴 가득히 흐믓한 미소를 띠면서 숟가락으로 죽을 떠서 입에 넣었다.
"정말 맛있구나. 간도 잘 맞고."
이렇게 치사를 하면서 두 번째 숟가락을 입에 넣으려다 말고 무엇인가 갑자기
생각난 사람처럼 잠시 머뭇거리다가 숟가락을 도로 상 위에 내려 놓았다.
제자는 죽 속에 무엇인가 잡물이 섞여 있어서 그러는 줄 알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왜 그러십니까? 하고 물었다.
선사는 아무 말 없이 숟가락을 들었던 손을 갑자기 앞쪽으로 뻗어
창틀의 먼지를 닦아내고는 그 손가락을 입으로 빨았다.
제자는 아마도 죽을 한 입 넣는 순간 창틀의 낀 먼지가 눈에 띄어
손으로 닦고 그 손가락을 빤 것이라고 여기고 황송해하며 사과했다.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선사는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게 아니다. 죽을 한 입 먹고 '참으로 맛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음식에 집착하고 있는 추한 내 모습을 보았다.
자네들한테서 '스승께서는 불도 수행을 좋아하신다'는 말을 듣는 것은 좋지만,
'스승께서 죽을 좋아하신다'는 말을 듣고 나를 위해 자네들이
특별한 죽을 만들어준다는 것은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음식에 대한 집착을 조심해야 한다고 새삼 반성하게 된 것이다 .
또한 자네들의 친절만 맛보면 되는 것을, 그만 맛을 느끼고 미각의 즐거움에
빠져들 뻔했다. 지금 창틀의 먼지가 묻은 손가락을 빤 것은
혀끝에 얽매인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제자는 스승이 일체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해탈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처신해도 조금도 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만 생각해 왔는데, 그런 스승조차도
끊임없이 반성하고 노력하며 정진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물새는 물 위에 떠 있을때는 물방울 하나 튀기지 않는다. 물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러나 물새는 그냥 제자리에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새는 한시도 쉬지 않고 몸을 좌우로 움직여 이리갔다 저기갔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물 밑에서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발을 놀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선에서는 '수증불이修證不二'라고 한다.
'수'는 수행修行을 뜻한다. 그리고 '증"은 깨달음을 뜻한다.
수행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깨달음이라는 목적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와 '증'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흔히 수행의 결과로 깨달음에 이른다고 말한다.
흔히 수행이 먼저 있고 깨달음이 나중에 있다고 여기지만
좌선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어99 홍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