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의 극의는 선의 도와 통한다
도둑의 극의는 선의 도와 통한다
11세기 입제종의 제5대조 법연선사法演禪師는 임제종이 중흥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그는 "도둑의 극의極意는 선의 도와 통한다"는
역설적인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예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도둑질의 명인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그토록 날렵했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은퇴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여러해를 두고
갈고 닦은 기술을 아들에게 전수하기로 했다. 그는 아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오늘 밤에 나를 따라오거라.
도둑질의 기술 가운데 지금까지 가르치지 않은 것을 가르쳐 주겠다."
기대에 부푼 아들은 밤일에 대비해서 낮잠을 실컷 자고는 밤이 되자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그 날 밤에 털기로 한 부잣집은 미리 염탐을 해오던 집이었다.
두 사람은 담을 뛰어넘었다. 이윽고 광에 걸린 큼지막한 빗장까지
손쉽게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가운데에 커다른 반닫이가 놓여 있었다.
아들이 보기에도 그 속에는 값진 옷이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았다.
"바로 이것이다. 너는 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돈이 될 만한 옷을 골라 보거라."
아들은 아버지가 이르는 대로 반닫이 안으로 들어가서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반닫이 뚜껑을 닫고 자물쇠를 잠그고는
"도둑이야!" 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자기 혼자 도망쳐버렸다.
아들은 반닫이 안에 갇힌 채 아버지의 심한 처사를 원망했다.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당장 붙잡힐 것이 분명했고,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으면 언제 밖으로 나가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이런저런 궁리를 했다.
'어떻게 해서든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빈손으로 도망친다면 도둑의 자격이 없다.
더욱이 오늘 밤은 특별한 날이다. 아버지로부터 면허증을 받는 날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조금씩 마음에 여유가 갱겼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 입구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아들은 '이 때다!" 라고 생각하고
반닫이 안에서 쥐가 물건을 긁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은 그 집 하인이 촛불을 들고 장롱옆으로 와서 "쥐가 있나?"
하고 중얼거리며 자물쇠를 열었다. 그 순간 아들은 곧 바로 안에서
뚜껑을 열어젖히고 나와 하인이 들고 있는 촛불을 불어서 끄고는 도망쳤다.
그러나 도둑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집 안에 득실거려 쉽게 도망칠 수가 없었다.
아들은 문득 꾀가 나서 큰 돌을 우물 속에 던졌다.
그리고 우물 속에서 풍덩하는 소리가 들리는 때를 맞춰서 아들이 소리를 질렀다.
"우물 속이다! 도둑이 우물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 소리에 온 집안 사람들이 우물가로 몰려들었고,
아들은 그 틈을 이용해 간신히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들은 아버지에게 불평을 늘어 놓았다.
"아버지도 너무 하십니다. 제가 잡히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습니까?"
아버지는 무서운 얼굴을 하며 아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도망쳐 나왔는지 말해 보거라."
아들이 자초지종을 보고하자, 아버지는 그제서야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잘했다. 너도 이제는 어엿한 도둑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셈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에 법연선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도 도둑이 기술을 닦는 것과 같다. 남이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남으로부터 배운 것은 더더욱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활로를 찾아내는 것이
선이며,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선의 교육이다."
나의 선어 99 홍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