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흐름에 따라가시게

갓바위 2023. 10. 16. 08:51

 

흐름에 따라가시게

한 젊은 수행자가 주장자를 만들 나무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다가

깊은 산중에서 그만 길을 잃었다. 날은 저물고 돌아가는 길을 찾아

허둥대던 수행자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풀옷을 걸친 한 노스님을 만났다.

길 잃은 수행자는 산속 암자에 은거하는 노스님에게 묻는다.

"스님께서 이 산에 들어와 사신 지 몇 해나 되었습니가?"

노스님이 답한다. "둘레 산 빛이 푸르렀다가 누레지는 것을 보았을 뿐이네."

수행자는 과거나 미래에 살지 않고 오로지 현재를 최대한 살고자 하기 때문에

지난 세월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자 젊은 스님은 나갈 길을 묻는다.

 

"산을 내려가려면 어디로 가야 할가요?"

"아, 그러신가. 저 골 따라 흐르는 물이 보이시지? 그 흐름을 따라가시게."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문제와 만난다.

때로는 어려움인 줄 모르고 지나는 어려움도 많다.

 

그러다가 뒷날 돌이켜보니 커다란 위험이 비껴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모골이 송연해질 때도 많다. 난관은 이처럼 알아차리지 못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많지만, 때로는 2008년에 밀어닥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론

사태에서 비롯한 세계 금융위기처럼 느닷없이 덮치는 일도 많다.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든 위기는 절체절명이다.

위기에 맞닥뜨렸다고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빛을 잃는다.

갑자기 시야에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엄습하는 듯한 공포에 휩싸인다.

그래서 허둥대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흐름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다. "흐름을 따라가라"는 말은 위험에

처했을 때 억지로 무엇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무리수를 두지 말고

하늘에 연을 띄우고, 강이나 바다에 돛단배를 띄우듯이

바람결이나 물결을 잘 써서 운행하라는 말이다.

 

옛날 우물가 여인들은 갈증을 느껴 물을 달라는 나그네에게

우물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 잎을 훑어 물바가지에 띄어 줬다.

심한 갈중에 시달린 나그네가 허겁지겁 물을 마시다

사래 들지 않게끔 하려는 결 고운 마음 씀이다.

 

목마른 입술을 가로막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버들잎'에서

우리는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슬기를 배운다.

너무 달리다 보면 먼지가 많이 일어, 시야가 뿌옇게 된다.

 

그러면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딘지 가야 할 곳이 어딘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됐을 때,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찬찬히 둘레를 돌아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바를 정正은 한 일 一자와 그칠 지止글 한데 모은 글씨다.

 

지止는 사람 발자국 모양을 형상화한 상형문자. 지금은 '그치다,

머무르다'는 뜻으로만 알고 있지만, 지止에는 발을 멈춘다는 뜻과

발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간다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그 위에 한 일자를 얹은 정正은 가던 길 멈춰 서서 한 생각 돌이켜 보라는

말이다. 바르다는 것은 평평한 것, 균형과 조화가 갖춰진 상태만을

뜻하는 것 같지만 정에는 멈춤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그칠지에는 나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렇게 정에는 '흐름'이 있다.

흐름을 따르라는 말은 자연을 거슬러 인위로 무엇을 해보겠다고 억지

부리지 말라는 말이다. 흐름 속에 든 것은 경직이 아니라 부드러움이다. '

흐름을 따라가라'는 말은 꼭 위험에 처했을 때뿐만이 아니라 언제라도

 

인위로 무엇을 이루려는 경직된 마음을 버리고 몸에 힘을 빼고 자연 흐름에

맡기라는 말이다. 가던 길 멈춰 서서 한 호흡 가다듬고 여유를 되찾는 일이다.

절집에서 참선을 권하는 까닭도 다 여기에 있다. 참선 명상이란 호흡을 가다

듬어 내 모습을 돌아보는 일이다. 나란 존재가 본디 자연이라는 깨침이다.

​빼기와 흐르기, 자연으로 돌아가기다.

숨결 변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