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필요로 하지 않음으로써 필요로 한다

갓바위 2023. 10. 21. 09:15

 

필요로 하지 않음으로써 필요로 한다

어떤 사람은 불교가 감정을 배척한다고 하는데, 사실 불교는 감정을 아주

중요시하는 종교입니다. 불교에서 배척하려는 것은 사사로운 정과 욕심입니다.

사사로운 정은 자비로 승화시키고, 사욕은 정화하여 지혜로 바꿉니다.

 

불교에서 주장하는 감정은 봉헌奉獻, 곧 기여하는 것이지

점유가 아니며, 보시이지 탐욕을 구하는 자비가 아닙니다.

불교에서 주장하는 애정은 모든 중생을 사랑함이지, 한 특정 대상이 아닙니다.

 

보살이 중생을 괴로움에서 구하려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감정의 가장 높은 표현

입니다. 자비롭고 지혜로운 감정이 있으면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달콤한 애정을 좇으며 일생을 보내는데 애정이 물론 즐거움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또한 고통을 부르는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신문을 펼쳐보면 끔찍한 사건들이 끝이 없고, 그 원인을 따져보면

애정과 금전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지혜로움과 자비로움이 없는 애정은 위험한 함정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인생의 즐거움은 애정과 금전 이외의 것이 아닌데

감정을 없애고 금전에 욕심을 내지 말라는 불교를 믿어서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불교에서는 금전을

배척하지도 않고, 황금을 독사라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가난하고 궁하다는 것은 죄악이 아니듯, 부귀 또한 싫어하고 배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승보살은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탐하는 마음을 조장하지 않고 불법을 널리 펼침에

유리하다면 돈이나 지위를 도를 따르기 위한 도구가 어찌 아닐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배움을 구하고 학문을 연구하려면 학비가 있어야 하고 사업을

성취시키려면 자본이 있어야 하듯이, 학비나 자본을 쓰지 않고서

어떤 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돈을 좋지 않게 쓰는 사람에게는

어떤 경우 금전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적절히 잘 운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뜻에 따라 금전이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전 그 자체는 결코 선악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쓰임새가 법에 맞는가 안 맞는가이며,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움켜쥘수 있는 능력, 내어놓을 수 있는 배짱이 있는가 없는가입니다.

 

중국 남송 초기의 무장이었던 악비(岳飛, 1103~1141)가 "한 나라가 부강하길

바란다면, 문관은 재물을 사랑하지 않고, 무장은 죽음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직 스스로 멸망을 초래함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며

당시의 국가 정세를 개탄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금전이나 생사를 나라보다 중요시해서,

재물을 보면 차지하려 하고, 위험에 부딪치면 두려워하고

희생정신이 없다면 나라는 자연히 생존할 수 없습니다.

 

불자들은 세간을 벗어난 출세간黜世間의 정신으로 세간에 드는

입세入世의 사업을 해야 합니다. 세간을 벗어나려는 생각이 있으면

세상의 명예나 이익에 대해 탐내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일체의 성취를 사회대중에 보답하고, 대중에 유익한 일이라면

설사 목이 땅에 떨어지더라도 기꺼이 나서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불교에서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누라도 필요 없고, 재물도 필요 없다고 말입니다.

 

사실 불교에서는 무엇이든 필요 없다고 하지 않고 필요함을 더욱 강구합니다.

단지 불교가 필요로 하는 내용, 필요로 하는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자기의 이익뿐만이 아닌 모든 중생의 행복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필요로 하는 방법

은 '필요로 하지 않음으로써 필요로 한다(以不要而要)'는 무착심無着心입니다.

 

저는 우리가 없음을 있음으로 하고, 공空으로서 유有로 삼아서,

유를 공과 없음의 위에 세워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공하지 않으면 유有할 수 없고, 없지 않으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는 유한하고, 제한된 양, 제한된 수이지만, '무'야말로 무한하고,

무량무변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앞의 것은 좁고 작은 '유의세계'로, 중생들이 무지하여 '있음의 세계'를 빼앗기

위하여 머리가 터져라 하고 다투지만, 자기에만 한정하지 않고 더욱

광활하게 돌아보는 세계(回頭世界)가 있음을 모릅니다.

고개를 돌려서 초탈되고 더욱 광대한 세계를 돌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 돌아봄의 세계은 우리들의 사사로운 욕심과 정을 끊어 없앤 후에야

나타날 수 있습니다. 끊어 없어진 '무의 세계'에서는 생사가 끊어지고,

욕망이 소멸되어 모든 상대적인 것, 차별, 허망함 모두가 존재치

아니하니 이는 완전 해탈하고 거리낌 없는 세계입니다.

 

유유자적하고 소탈하고 걸림이 없는 인생 경지는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열심히 추구해야 할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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