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스승의 날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 신록이 그 푸름을 더해가는 2003년 5월 15일은 하안거
결제일이자 스승의 날이었다. 법정 스님이 길상사 법회에 나오시는 날과 스승의
날이 맞닿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로 길상사가 생긴 이래 그런 날이 없었다.
부처님 오신 날에 부처님에게는 꽃을 올리고 부처님 오신 뜻을 기렸지만
이제껏 이 시대 스승이신 법정 스님에게 고마움을 전할 기회가 없었던 길상사
대중들은 모처럼 맞은 스승의 날, 스님께 꽃과 향을 공양하기로 했다.
마침 수천 명이 모이는 대중법회가 아니고 하안거 결제법회인지라 한 7백여
명쯤 되는 스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인 조촐한 법석이라 더 정겨웠다.
스님이 법문 하고 법석에 오르신 뒤 "오늘은 모처럼 스승의 날과
하안겨 결제법회가 맞물린 소중한 날입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이 시대 스승이신 스님께 꽃을 올리겠습니다."라는
진행자 설명에 이어 거사림 회장 고경거사가 스님께 꽃을 올렸다.
이러서 모인 대중들이 목청 높여 '스승의 날 노래'를 불렀다.
"수레의 두 바퀴를 부모라 치면 이끌어주시는 분 우리 선생님
그 수고 무엇으로 덜어드리랴 그 은헤 두고두고 어찌 잊으랴
스승의 가르침은 마음의 등대 스승의 보살핌은 사랑의 손길."
"오월에도 보름날로 날을 받아서 세종날을 스승의 날 삼았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걱정 안 끼쳐 기쁘게 해드리자 우리 선생님
스승의 가르침은 마음의 등대 스승의 보살핌은 사랑의 손길."
스님은 받으신 꽃을 부처님 전에 올리시고는 쑥스러워하시며 "왜 안하던
짓을 하느냐. 이 시대 스승이라니 당치고 않다" 면서 법문을 시작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니 참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어떻게 스님이 앞에 서 계신데 '이 시대 스승'이니 하는 말은 낯 뜨겁게
입에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참 미욱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빛을 갚는다는데 생각이 짧아도 한참 짧았다.
스님은 평소 청법가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말씀하신다.
청법가는 "덕 높으신 스승님 사자좌에 오르사 사자후를 합소서.
감로법을 주소서······." 이렇게 이어진다.
스님은 "청법가에 나오는 사자란 사자가 뭇 짐승들을 제압하듯이
부처님 설법이 중생 번뇌를 없애준다는 뜻이며, 감로법이란 불사의 영생을
이른 진리인데, 덕도 높지 않은 내가 법문 시작 전에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낯 뜨겁고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말씀이시다.
'조고각하照顧脚下' 옛 절에는 법당이나 선방 앞 선돌에
이런 표찰이 붙어 있었다. 스승에게 제자가 물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스승은 "네 발밑을 보라照顧脚下."라고 답한다.
선禪 근본 뜻을 묻는 질문에 '발밑, 지금 네가 서 있는 곳을 보라'하는 되물음.
서 있을 때는 선 자리를, 앞으로 나아갈 때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아래
를 늘 살피라는 말이다. 발끝을 돌아보듯이 자기 삶에 대해서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라는 말이다.그런 되물음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몽실언니〉와〈강아지 똥〉을 쓴 동화 작가 권정생 선생이
죽기 두어 달 전 이현주 목사 손을 꼭 쥐고는 이런 말을 남겼다는데······.
"가 · 르 · 치 · 려 · 고 · 들 · 지 · 마 · 세 · 요."
이 말씀처럼 스님은 당신이 시주 은혜를 갚으려고 대중 법문을 하시지만
조고각하 발킽을 늘 살피시고 또 당신을 낮추고 또 낮추셨다.
법정 스님 숨결 변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