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길을 열라 자유

갓바위 2023. 10. 31. 09:08

 

길을 열라 자유!

이 땅에는 사람들이 다니던 많은 길들이 있다.

산길, 들길, 오솔길, 뒷길, 건너편길, 고샅길, 논두렁길, 뱀길,

봇짐장수들이 다니던 길, 달맞이길, 돌담이기, 장터 가는 길,

나무하러 가는 길, 꽃상여 나가던 길, 아스라한 세월 뒤안길······.

그 길들이 나나둘씩 사라져간다.우리는 왜? 길을 앓어갈까?

 

두 발로 서서 걷게 되면서부터 손이 해방돼 문명을 만들고 문화 꽃을

피웠던 사람들은 그 문명끝자락에서 어느 날 갑자기 다리를 잃었다.

공중부양, 한마디고 '두둥' 떠서 산다. 땅에 발 디딜 늠이 없다.

 

바빠서도 아니고 속도 때문만도 아니다. 칸칸ㄴ이 쌓여진

성냥갑 같은 속에 살면서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공중부양을 했다.

기리을 갈 때도 걷재 않는다. 곤중에 둥둥 떠다닌다. 걸음을 잃어버린 길,

그 길은 이미 길이 아니다. 길 아닌 길에서 숨을 쉴 겨를이 없다. 숨이 막힌다.

 

티베트 말로 사라마은 '걷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 말을 뒤집으면 걷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른 말이다.

법정 스님은 서서 걷는데서 사람다움이 배어 나온다는 말씀을 하신다.

 

터벅터벅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길섶에 풀들이 새나 곤둥들이 내게 담기고,

한발 한발 발을 옮기며 숨을 들이켜고 내쉬면서 자연과 교감하게 된다고,

걷는 행위는 숨 쉬는 행위다. 걷는다는 건 자연과 서로 통하는 놀이.

어머니 대지와 하나 되는 놀이. 본디 모습으로 돌아가는 놀이다.

그 잃어버린 길을 다시 내 우리에게 돌려준 사람이 있다.

제주 올레길 걷기, 시사저널 편집장이었던 서명숙이 '

놀멍 쉬멍 걸으멍(놀며 쉬며 걸으며) 천천히 걷는 길'을 새로 냈다.

 

서명숙은 본디 제주도 서귀포 둘신. 2006년 9월, 그이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산티아고 길' 88Km를 걸었다.

그 길은 야보고가 복음전파를 위해 걸어서 널리 알려진 뒤

1000년 넘게 수많은 가툴릭 신자들이 순례했던 길이다.

 

또 작가 파울로 코엘료 사람을 바꿔놓았다는 그 길을 서명숙은

나이 50에 걸엇다. 그 여정 막바지에 영국인 길동무가 서명숙에게 말했다.

"이제 너은 네 나라로 돌아가서 제 길(카미노)을 만들어가

나는 내 카미노를 맡들테니." 히 한마디가 그이 삶을 온통 뒤흔들엇다.

 

"산티아고 길이 성 야고보 히스토리herstory가 숨쉬는 길이니,

나는 설문대할망과 그 후손인 해녀들 허스토리Herstory 가

담긴 길을 만들어야지." 제주 올레는 그렇게 태어났다.

 

본디 '올레'는 자기 집 마당에서 마을어귀까지 이르는 골목길을

가리키던 말이다. 서명숙이 숨은 길을 찾아내고 끊어진 길을 잇고 사라진 길을

되살리고 없던 길을 새로 내 만든 제주올레는 2007년 9월 제주도 동쪽 시흥초등

학교에서 출발하는 제1코스가 열렸다. 해안을 품은 올레 길엔 리듬이 있다.

 

올레 길은 목적 길이 아니다. 그저 놀멍 쉬멍 걸으멍 된다.

올레 길에서 만나는 사물은 몹시 순하다. 바람이 그들을 순하게 만들었다.

거칠고 드세게 느껴지는 제주 바람이 날선 것들을 깍고

다듬고 부드럽고 살가운 곡선으로 다듬어 냈다.

 

그래서 바람은 제주 손길이다. 결 고둔 제주 숨결이다.

그래서 제주는 부드럽고 느리다. 그 바람에 한국 사람뿐 아니라,

세계 사람들이 마치 마을 어귀를 걷는 것처럼 느림을 취하는 길이 되었다.

그렇게 올레는 죽었던 제주가 올레 덕분에

다시 산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제주 명물이 됐다.

인생길은 이러지는 만남 길이다.

우리는 길에서 짝을 만나고, 동무를 만나고, 스승을 만난다.

그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안목을 깨치고, 인생을 배우고, 사는 묘미를 터득한다.

 

까칠하면 까칠한 대로, 부드러우면

부드러운 대로 모든 만남에는 서로 주고 받아 서로 깨침이 있다.

길과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길을 떠난 경우가 많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이 그리움 하나 달랑 들고 길을 떠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길을 걷는 건 해방, 해탈이다. 나를 벗어나

너를 만나는 놀이.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직관과 감성에

나를 내어 맡기고 바람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길은 길에 든 사람을 가만히 받아들이고선 무장해제를 시킨다.

길이 가만가만 조곤조곤 말을 걸어온다. 길이 다독인다.

길은 그렇게 우리 동무가 되고, 연인이 된다.

그러면 길벗은 어느덧 제 흥에 겨워 노래하고 춤추게 된다.

 

그렇게 길에는 열림이 있고, 만남이 있고, 환희가 있으며,

그렇게 내가 길에 들고 길이 내게 든다. 바람처럼 살갗을 헤치고 뼛속

깊이 스며들어오고 빠져나간다. 무시로 나를 드나든다. 그래서 길은 신비롭다.

​길을 열라! 우리는 그 길에서 자유를 만난다. 자유! 나는 자유인이다.

 

숨결 변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