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

갓바위 2024. 1. 3. 11:08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

전륜성왕 N0! 부처 Yes!

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 가지 장면으로 요약한 팔상도의

두 번째 장면을 '비람강생상'이라고 부른다.

 

비람강생상은 '룸비니〔비람〕' 동산의 무우수 아래에서 실사르타 태자가

탄생하는 모습, 탄생직후 태자가 한 손은 하늘을 다른 한 순은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치는 모습, 천사들이 온갖 보물로

태자에게 공양을 올리는 모습, 용왕이 태자의 몸을 씻어드리는 모습,

 

태자를 모시고 왕궁으로 돌아오는 모습, 아시타(Asita)라는 이름의 선인이

태자의 관상을 보는 모습의 여섯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마지막 여섯 번째 장면에서 아시타 선인이 통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타 선인이 통곡하는 것이 의하하여 부처님의 아버지

정반왕께서 그 이유를 묻자 선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대왕이시여 태자께서는 서른 두 가지 상호를 갖추고 계신데,

이러한 상호를 갖는 분이 세속에서 살아간다면 장성한 후에 반드시

전륜성왕이 되어 온 세상을 통치하실 것이고, 출가하여 수행자가 된다면

반드시 깨달음을 얻어 천신과 인간을 널리 제도하는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태자의 상호는 너무나 완벽하기에 출가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얻고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실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제 나이가 이미 120세가 되어서 얼마 후에 목숨을 마칠 게 분명하니

태자께서 부처님이 되시는 것도 보지 못하고

가르침도 듣지 못할 것이라 슬퍼서 웁니다."

 

우리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궁극적 목표에는

전륜성왕과 부처의 두 가지가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 두가지 목표 가운데 부처가 더 우위에 있다는 점이다.

 

《대지도론》에서는 전륜성왕과 부처 모두 32상을 갖췄으며 복덕이

무량하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 부처가 우월하다고 가르친다.

 

첫째 전륜성왕은 탐·진·치의 번뇌가 가득하지만 부처에게는 그런 번뇌가 없다.

둘째 전륜성왕은 생로병사를 되풀이 하며 윤회하지만

부처는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셋째 전륜성왕은 기껏해야 인간이 사는 4천하를 통치하지만

부처는 무량한 온갖 세계의 중생을 이끈다.

 

전륜성왕은 재물을 자유자재로 쓰지만(財自有) 부처는 마음을 자유자재로

쓴다(心自在). 전륜성왕은 천락(天樂)을 추구하며 살지만 부처는 천락은

물론이고 최고의 삼매락(三昧樂)조차 추구하지 않는다. 전륜성왕은

밖의 자극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지만 부처는 그 마음 자체에 즐거움이 있다.

 

전륜성왕의 길은 무력을 통해서 황제의 지위에 오르려는 '세속적인 영웅호걸'의

길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라이온 킹'과 같은 최강자가 되는 길이다.

수많은 나라와 부족들을 굴복시키고 하나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통해 상상을 초월한 살육을 자행해야 한다.

 

알렉산더가 그랬고 진시황이 그랬고 칭기즈칸이 그랬다.

이러한 영웅호걸들이 나타나면 민중은 도탄에 빠진다.

 

12세 어린 나이에 농경제에 참석했다가 '고기 몸'의 비극을 목격하고

비감에 젖었던 싯다르타 태자였기에 세속적인 영웅호걸을 추구하는

'전륜성왕의 길'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들 것이다.

 

29세가 되었을 때 태자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리게 된다.

아시타 선인의 예언과 같이 출가하여 구도의 삶을 시작했던 것이다.

권력과 금력으로 세상을 제압하려는 동물적 삶을 버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셨다. 비폭력의 길, 깨달음의 길이었다.

진정한 영웅, 대웅(大雄)의 길이었다.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