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도성이 개미집
만국도성이 개미집
예미도중(曳尾塗中)이란 말이 있습니다.
꼬리를 진흙 속에 끌고 다닌다는 의미입니다.
부귀로 인하여 속박 받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가난함 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편이 낫다는 것을 비유하는 장자의 추수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초나라 위왕이 신하를 보내 장자를 설득하여 나라의 재상이 되어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이에 장자가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초나라에선 신귀라는 3천년을 살다 죽은 거북이 뼈를
비단 상자 속에 넣어 영물로 보관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일 그 거북이 살아 있다면, 죽어서 소중하게 간직되는 뼈가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아니면 살아서 꼬리를 진흑 속에 끌고 다니길 바라겠습니까?"
위왕의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그야 물론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기를 바라겠지요."
장자가 다시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돌아가 주십시오.
나는 진흙 속에서 고리를 끌며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세상의 부귀공명에 탐착한 채 비단 상자속의 거북이 뼈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신 서산대사의 게송이 있습니다.
萬國道城如蟻垤(만국도성여의질)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이요
千家豪傑若醯鷄(천가호걸약혜계) 천하의 호걸도 하루살이라
一窓明月淸虛枕(일창명월청허침) 창에 달빛 맑고 텅 빈 베갯머리
無限松風韻不齊(무한송풍운불제) 끝없는 솔바람 소리는 제각각
사산대사의 게송을 듣고, 자연과 벗 삼는 청빈한 삶을 꿈꾸며 세속적인 부와 명예
를 버려야되는 것으로 여긴다면, 도둑이 파출소를 피해 경찰서를 만난 격입니다.
만국도성은 그만두고라도 '만국도성이 개미집'이란 견해조차
버리지 못한 채 꽉 움켜잡는 맹꽁이 짓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국도성과 천하호걸의 꿈에 취해 부와 명예을 추구하는 것과 정반대로 부와
명예는 버려야 하는 부질없는 것이란 단견(短見)에 빠져 있는 것이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여전히 '나'란 놈이 제 입맛에 맞는 생각놀음을 일삼고 있는 것입니
다. 중도를 벗어난 채 양변에 떨어져 헤매고 있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세속의 부와 명예를 애써 버리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토굴을 짓고
산다고 해서 밝은 달빛을 듣고, 솔바람 소리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창으로 스며드는 달빛과 하나 되고,
솔바람과 둘 아닐 수 있을까요?
귀로보고 눈으로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