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허대사
스님의 휘諱는 융함(隆銜)이고 자는 담허이며
중국 하북성 영하 왕씨 아들로서
속가 이름은 복정(福庭)이다.
부친의 휘는 덕청(德淸)이고 모친은 장씨이다.
모친의 꿈에 범승(梵僧)이 나타나 하룻밤 묵고 가게
해달라는 청을 받고 다음날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光緖 元年 6월 초하루 (1874년)에
태어났는데 3살이 되도록 부모를 부를 줄 모르고
오직 채식(喫齋)두 글자만 말할 줄 알았으며
5,6세가 되었을 때 어머님은 꿈에서
스님이 되 있는 것을 보았다. 11살에
鄕塾(서당)에 들어가 사서를 읽었다.
12살 때 우연히 외갓집에 가게 되었는데
외할머니가 보니 엄연한 스님의 모습이었다.
14살에 서당을 그만두고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출세의 뜻을 품었다.
17살에 결혼을 하였고 저승을 다녀오는 꿈을
꾸고는 출세의 뜻이 더욱더 견고해 졌다.
26세에 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하자 전쟁을 피해
영구(營口)에 이르러 친구와 함께 제생당(濟生堂)
약국을 운영하고 선강당에서 인과를
강술하며 시간이 나면 능엄경을 연독하였으며
깊이 깨달은 바 가 있었다.민국 6 년
(1917년) 43세에 또 다시 출가를 결심하고
몰래 집을 나와 천진으로 가서 청수원의
청지(淸池)화상의 소개로 내수현 고명사의
인괴(印魁)화상을 은사로 득도 하였고
절강성의 관종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때마침 제한스님이 관종사에 계셨으므로
제한스님으로 부터 천태교법을 전수 받았다.
스님은 마음을 기울여 가르침을
청하였고 남달리 진전이 빨랐다.
제한스님께서는 스님이 북방불교를 부흥하게
하기위해 각별히 정성을 다해 가르쳐 주셨다.
민국 9년에 도반인 관종사 주지스님
선정스님과 함께 대장경을 모시기 위해
북방으로 탁발을 나섰다.영구에 도착하니
스님이 운영하던 약국이 아직 남아있었고
부인 모씨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선정스님께
귀의를 하여 채식을 하며 염불을 하였다.
아들 4명중에 두 분이 출가를 하였다.
(부인과 아들이 미리 갈 시간을 알고
전부 극락왕생을 하였음)
스님은 중년에 출가를 하여 천태종의 법맥을
이어 받았으며 평생 강경과 설법, 사찰건립과
도제 양성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다.
스님은 체구가 크고 위엄이 있었으며
목소리가 우렁찼다. 매번 법상에 오를 때 마다
사부대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는데 틈새를
파헤치고 막힌 구멍을 인?! 되臼? 원하는
가르침을 얻지 못한 이가 없었다.
스님은 수많은 곳에서 사찰을 중건, 중수
하였으며 그중에서 심량 반야사 천진
대비원이 제일 저명했다. 가능한 각 사찰에
불학원을 설치하여 후기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그 중에서
청도의 담산사가 성황을 이루었다.
스님은 평생 교(敎)로는 천태학을 가르치고
수행(行)은 정토를 근본으로 삼았다.
평소 후학들에게 지관(止觀)과 염불을 닦을
것을 가르쳐 주었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염불할 것을 간곡히 권하였다.
문하에 염불공부가 깊어 미리 갈 시간을
알고 해탈을 얻은 자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스님은 30여 년간 반야심경 강의를 64번,
금강경 42번, 아미타경24번, 능엄경13번을
설하였고 시방총림을 9곳, 불학원(佛學院)13곳,
굉법지원(宏法支院) 17곳을 건립 하였고
해문(解門)은 천태, 행문(行門)은 정토로
대중들을 이끌었으며 각 사찰마다
오후 불식과 하안거에 계율을 엄격히
지키셨는데 북방불교에서 보기 드물었다.
항일전쟁 승리 후 장춘 반야사에서 전계(傳戒
)를 마치고 청도의 담산사(湛山寺)로
돌아오신 스님은 상좌들의 요청으로
평생의 사적을 구술(口述)하고
제자 대광(大光)이
영진회억록(影塵回憶錄) 편성했다.
38년 홍콩신도들의 요청으로,
홍콩에서 법을 펴게 되었는데 석전완의
홍법정사에 주석하시면서 연이어
화남 불학원, 불교인경처, 도서관, 천태정사,
홍법불당, 제공(諦公)기념당, 청산극락사,
청수만 담산사 등을 창건 하였다.
스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일 대중들을
맞이하여 강의를 하셨으며 하루 종일
쉴 틈이 없었다. 항상 대중들에게
이르기를 불법의 요지(要旨)는 간파(看破),
방하(放下), 자재(自在)에 있다고 하셨다.
스님의 설법은 구름과 같고 비와 같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불문에 귀의 한 자가 수백만에 이르렀다.
1963년 음력 6월 22일에 열반 하셨는데
세수89세, 승랍, 계랍은 46년, 법랍38년이었다.
8월 12일에 다비식을 거행하는데 출가,
제가제자들이 전단과 침향 천여 근으로
다비식을 올렸다. 몇 리 밖에서도 향기를
맡을 수가 있었으며, 다비 후에 4천여 과의
사리가 나왔다. 구룡의 청수완, 담산(湛山)
산기슭에 사리탑을 세워 봉안 하였다.
스님의 저술과 제자의 기록으로는 금강경 강의,
금강경 친문기,심경의소,심경강의,심경친문기,
심경강록,능엄경묘현요지,보현행원품수문기,
보문품강록,대승기신론강의,
천태전불심인기주석요,시종심요! 의기,
신심명약해,증도가약해,염불론,담산문초,
강연록등과 제자 대광이 기록 한
영진회억록 등이 있으며, 담산대사법휘
(法彙)로 편집되어 중화속장경
(中華續藏經) 속에 편입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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