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본처와 첩

갓바위 2019. 1. 16. 09:58
 본처와 첩

여자 둘을 데리고 살면 똥이 
새까맣다더니 시방 이초시가 그 꼴이다. 
선친으로부터 수월찮은 재산을 
물려받았건만 되지도 않는 과거에
 매달려 십수년 허송세월을 보내고, 
책을 아궁이에 쓸어 넣은 후로 
주색잡기에 빠져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냉수 한사발을 
벌컥 들이켜고 보니 문전옥답 
거의 다 날리고 빚은 늘어만 
가는데 남은 건 집 두채뿐이다.
한채는 본가요 또 한채는 첩 집인데, 
첩 집은 담보 잡혀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되어 할 수 없이 
젊은 첩이 보따리를 싸 들고 
본가로 들어오게 되었다. 
안방엔 억세고 심통이 끓는 본처가, 
행랑채엔 야들야들하지만 성깔이 
있는 첩이, 두방 가운데 있는 
사랑방엔 이초시가 자리 잡아 
대치하고 있는 적과 
적 사이에서 완충벽이 되었다.
삼십대 중반의 이초시는 
나름대로 규율을 만들었다. 
사흘 간격을 두고 본처와 
첩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본처와 첩은 엿새 만에 한번씩 
합방을 하는 셈이라 아니어도 
불만이 쌓이는데, 삐쩍 마르고 
키만 큰 이초시라는 인간은 본처에게 
갈 날만 되면 콜록콜록 고뿔에 
몸살 핑계를 대며 초를 치기 일쑤다.
본처가 부엌에서 밑물을 하고 
간단한 술상을 차려 오는 날 밤엔 
마지못해 올라가 껍죽껍죽하다가 
열만 잔뜩 올려놓고 쓰러져 
본처의 분통만 터지게 했다. 
본처는 분통을 첩에게 터뜨린다.

“이건 왜 빨지 않았어?”
빨랫감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개울가로 갔다 온 첩에게 
본처가 양손을 허리에 찬 채 
눈을 부릅뜨고 따졌다.“형님, 
나는 이 집의 하녀가 아닙니다. 
형님 속옷, 형님 고쟁이는 
형님이 직접 빠세요.”
가냘픈 첩은 본처에게 “형님, 형님” 
하지만 매사에 조금도 기울어지지 않는다.
이초시가 장에 갔다 온 날이 마침 
첩과 합방해야 하는 날인데, 
이초시는 몸이 아프다고 
저녁도 거른 채 드러누웠다. 
본처는 속이 부글부글 끓을 수밖에 
없는 밤인데, 이초시가 아프다고 
제 방에 누웠으니 기특하기 짝이 없다. 
꿀물을 타서 사랑방에 가니 
이초시가 이불을 덮어쓴 채 
땀을 흘리며 끙끙 앓고 있다. 
본처는 안방에 돌아와 편안하게 
발 뻗고 단잠에 빠졌다.
아파 죽는다던 이초시가 슬며시 
일어나 안방에 불이 꺼진 걸 보고 
행랑채 첩 방으로 스며들었다. 
창밖으로 불빛이 새 나가지 않도록 
이불을 치고 호롱불을 켠 채 장에서 
사 온 노리개와 박가분을 건네고 
깨엿과 땅콩을 함께 먹었다. 
첩이 두번이나 까무러치도록 
이초시는 온 힘을 쏟았다.
어느 날, 이초시가 산 너머 잔칫집에 
갔다가 술 한잔을 걸치고 집에 왔더니 
둘이서 대판 싸움이 붙어 
서로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있었다. 
이초시는 둘을 떼어 놓고 첩의 
따귀를 갈기며 빨랫방망이를 들고 “
내 오늘 이년을 때려죽일 테다” 
첩의 멱살을 잡고 행랑채로 갔다. 
본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부엌으로 들어가 세수를 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거머리 같은 년에게 정
이 떨어진가벼” 씩 웃었다.
웬수 죽는 꼴을 보려고 행랑채로 가 
절구통에 올라서 들창문 틈으로 
첩 방을 들여다보던 본처는 깜짝 놀랐다. 
발가벗은 연놈들이 구름을 몰고 와 
비를 퍼붓는 것이 아닌가! “
야, 이놈아! 때려죽이려거든 
나를 죽여라.” 본처는 
절굿공이로 들창을 부쉈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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