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그 아버지에 그 아들

갓바위 2019. 12. 24. 11:11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정갑손은 관직에 몸을 
담아오면서 어찌나 청렴
결백한지 사람들은 
그를 대쪽대감이라 불렀다. 
사적으로는 다정다감하고 
겸손하며 친절하지만 공적인 
일에는 서릿발처럼 엄격해 
인정이 끼어드는 법이 없다. 
부하들에게는 언제나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쌀 한톨이라도 나라 재산을 
축내는 자는 목을 쳐 벌하리라.” 
어떤 땐 멋모르는 관속이
뇌물이라 할 것도 없는 
집에서 만든 곶감을 싸 와도 
“네 이놈,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런 짓을 하는 게야!”
호통을 쳐 돌려보냈다.
정갑손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초가집에서 
정갈하게 살며 평생을 
무명이불에 부들자리를 
깔았으며 비단이불 
한번 덮어보지 않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정갑손의 아들 정오도 
어리지만 매사에 반듯했다. 
글도 빼어나 훈장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또래 친구들이 사자소학을 
공부할 때 정오는 벌써 
사서를 읽기 시작했다. 
훈장님이 출타할 땐 
정오가 학동들을 가르쳤다.
효성도 지극해 서당 갔다 
산길을 걸어오며 
산딸기를 따면 다른 
아이들은 제 입에 넣기 바쁜데 
정오는 집으로 갖고 와 
아버지께 드렸다.
몇년 후, 정갑손은 함길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됐고 
온 식구들이 
그곳으로 이사 갔다. 
정오는 열일곱 헌헌장부가 
되어 삼경까지 통달했다. 
정갑손이 나라의 부름을 받아 
한양에 가서 한달간 맡은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고
다시 함길도로 돌아와 본즉 
결재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정갑손이 밤을 새우며 결재하다가
향시 합격자 명단을 보게 되었다. 
향시는 지금의 도청급인 
관찰부에서 치르는 지방과거로 
합격하면 초시나 생원이 되어 
본고사인 한양의 과거를 
볼 자격이 부여되었던 것이다. 
함길도 향시 장원에 정오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그는 
이방을 불러 호통을 쳤다. 
“당장 정오의 장원을 
취소 시키렷다.” 
이튿날 아침, 향시출제채점
위원인 시관들이 몰려왔다. 
“정오의 학문은 당장 한양 과거에 
가도 장원이 틀림없소이다.” 
“그것은 우리를 
모독하는 것이외다.” 
나이 지긋한 시관들이 항의하자
정갑손은 한술 더 떴다. 
“정오의 장원을 
취소하는 게 아니라 
향시 합격을 
취소하는 겁니다.”
시관들은 모두 사표를 
던졌지만 정갑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관찰사로 있는 한 
정오는 합격시킬 수 없소이다.”
이튿날 아침, 정오는 
밝은 표정으로 아버지 
정갑손에게 큰절을 올리고 
경상도 그의 외가로 내려갔다.
이듬해 그는 경상도에서 
향시 장원을 하고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에도 장원을 해서 
어사화를 쓰고 말에 올라 
함길도로 돌아갔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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