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풍간. 한산. 습득

갓바위 2020. 8. 25. 07:47
풍간. 한산. 습득 

당나라 때 천태산 국청사에는 세 분
불보살의 화신이 계셨다고 전해진다.

문수 보살의 한산, 보현 보살의 습득, 그리고
아미타불의 풍간 스님이 바로 그 세 분이다.

한산은 국청사에서 5리 가량 떨어진 한암굴에서 혼자 살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한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습득은 풍간 스님이 버려진 갓난 아이를 주워다
길렀다 하여 습득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습득은 국청사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으로,
대중들로부터 늘 천대를 받았으며, 한산 역시

절에서 나오는 찌꺼기를 얻어다 먹으며 상식 밖의
기행을 일삼으니 대중들은 너나없이 미치광이로 여겼다.

풍간 스님은 수십 년 전부터 국청사에 살고 있었는데
그의 출신이나 내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때때로 호랑이를 타고 출입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있어 예사 스님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한산과 습득이 대중들로부터 조롱감이 될 때마다 풍간
스님이 이를 알고 나와서 대중들을 꾸짖고 말려 주었다.

한산과 습득은 만날 때마다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들
처럼 항상 웃고 떠들며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워 했다.

비록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천한 신분이었지만,
정작 두 사람의 말과 행동에 비굴하고
천한 기색은 찿을래야 찿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욕하고 비웃어도
화내는 법이 없이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또한 남루한 옷에, 머리는 자라는대로 두어 산발을 하고,
몸 씻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건만
이상하게도 언제나 맑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하루는 국청사에서 계를 설하는 법회가 있었다.
마침 국청사에 온 한산과 도반인 습득은 큰법당으로 갔다.

두 사람이 웃고 떠들며 다가오자 법당 문을 지키고 있던
인례사(引禮師)가 그들을 가로 막았다.

설계(設戒)에 방해가 되니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산이 말했다.

"설계를 들을 자격이 따로 있는가?"
"뭐, 부처 종자가 따로 있을라구,"

하며 습들이 빈정대었다. 인례사는 벌컥 화를 내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떠들고 있느냐. 조용하지 못할까!"

이말을 듣고 둘이 마주보며 크게 웃다가 한산이 말하였다.
"계란 본래 고요하고 고요한 것인데,
스님은 계를 받기도 전에 화부터 내시오?"

다시 습득이 받아 말했다.
"가세. 인례사가 성내지 않는 것이 지계(持戒)인 줄을
모르다니, 저 안에 들어가 보나마나가 아닌가."

두 사람은 법당이 떠나가라 웃으며 후원 쪽으로 사라졌다.
절 한쪽에는 토지신을 모셔놓은 조그마한 신당이 있었다.
토지신은 도량을 지키는 신장이다.

그러나 구석의 조그만 법당이라
누구하나 관심을 두고 돌보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습득이 혼자 드나들며 청소를 하고 공양을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토지신당의
문짝이 낡고 오래되어 떨어져 나갔다.

습득이 마지를 올리고 한참 뒤 다시
가지러 올라가니 불기가 텅 비어 있었다.

근처의 까마귀가 열려 있는 신당으로
날아 들어와 다 쪼아 먹어버린 것이었다.

습득은 빈 불기를 보고 토지신장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며 말하였다.

"이 바보같은 놈아, 네가 이 밥을 먹고 대중들을
잘 지키라고 했더니, 제 밥을 다 빼앗겨?
그런 놈이 어떻게 도량을 지킨다고!"

그렇게 토지신을 실컷 패주고는 빈 불기를 가지고 내려왔다.
며칠동안 그런 일이 계속되었다.

하루는 온 대중이 꿈을 꾸웠는데,
토지신장이 나타나서 통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보현 보살께서 '네 밥도 못찾아 먹느냐'
하시며 날마다 꾸중이요, 매질이니 제가 죽을 지경입니다.

내집에 문을 닫아서 까마귀 떼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주든지,
보현보살께 말씀드려서 공양을 올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 주십시요."

다음날 아침, 국청사는 온 대중이 같은 꿈을 꾼 일로 술렁거렸다.
주지 스님은 잠자코 사시마지 때를 기다려 토지신당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이윽고, 신당에 올라가는 사람을 보니 바보요,
미치광이 같은 습득이 아닌가.

습득은 신당에 들어가서 바닥을 쓸고 단을 닦더니
차와 마지를 올렸다. 그런 후 부엌으로 내려갔다.

습득이 사라지자 나무위에 앉아 있던 까마귀떼가 공양위에
덮치더니 순식간에 쪼아 먹고 다시 나무 위로 날아갔다.

한참 뒤, 각 법당에서 마지가 내려오자
습득이 하던 일을 멈추고 신당으로 올라왔다.

습득이 불기를 들여다 보고
토지신장의 뺨을 치면서 꾸짖었다.

"내가 그만큼 말해도 못 알아듣고 밥을 또 빼앗겨?
제 밥 그릇도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도량을 지켜?
멍청한 놈 같으니라구!"

습득의 매질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토지신장에게 엄한 눈길을
한번 주고는 부엌으로 사라졌다.

이를 지켜보던 주지스님과 몇몇
스님들은 눈이 휘 둥그레지고 말았다.

결국, 여러 스님들이 의논한 끝에
토지신당에 문을 달아주기로 하였다.

문을 달고나니, 그날 밤 꿈에 토지신장이
기쁜 얼굴로 나타나서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주지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러 왔소.
이제 내 공양도 제대로 찾아 먹고
보현 보살께 꾸지람도 듣지 않게 되었소."

이런 일이 있은 후, 습득을 달리 보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여전히 많은 대중들이 그를 천대하였다.

아 고을에 여구윤이라는 사람이
자사(刺史)로 새로 부임을 하였다.

그런데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이 들어 자리에 눕고 말았다.

아무리 좋은 약을 써서 치료하여도 차도가 없자,
한 관원이 풍간 스님을 천거하였다.

"국청사에 계시는 신승(神僧) 풍간 스님이
도력이 높으니 고칠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풍간 스님을 모시러 관원을 보내게 되었다.
자사의 명을 받은 관원이 국청사에 닿기 전
호랑이를 타고 내려오던 풍간 스님과 마주쳤다

관원은 반가워하며 인사를 올렸다.
스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자사가 병이났다지?"
스님은 미리 알고 자사에게 가는 중이라고 하였다.

관원은 감탄을 하며 스님을 모셔갔다. 자사의 병을
살펴 본 스님은 환약 한 개를 꺼내어 자사에게 먹였다.

그러자 자사가 곧 기운을 차리더니 얼마 안가 병석을 털고 일어났다.
자사는 스님께 감사으이 예를 올리고 물었다.

"혹시 이 고을에 존경할 만한 성자가 계시면 일러 주십시오."
"있긴 하오만 자사가 알아볼 수 있을런지?"

"가르쳐 주신다면 제가 성심껏 모시고 싶습니다."
"국청사 부엌에 가보시오. 문수와 보현 보살을 만날수 있을테니."

말을 마친 풍간 스님은 호랑이를 타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사는 문수, 보현을 친견할 기쁨에 서둘러 국청사로 향했다.

자사가 방문한다는 전갈이 오자, 주지 스님과 대중들이 마중을 나왔다.
그러나 자사는 곧장 부엌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주지 스님이 궁금하여 물었다.
"부엌에는 무슨 볼일이 있으신지요?"

"문수, 보현 보살님이 거기 계신것을 모르고 계셨단 말이오?"
자사가 부엌으로 들어가니 마침 한산과 습득이
나물을 다듬으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사는 바닥에 엎드려 공손히 절을 하였다.
그러자 한산과 습득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풍간이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였군.
풍간이 아미타불인 줄 모르고 여길 오면 뭘해!"

그리고는 산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자사가 허겁지겁 두 사람의 뒤를 쫓아 올라가니
두 사람은 한암굴앞에 멈추어 서있었다.

"너희들은 들으라. 세월은 무상한것,
잠시도 머물지 않으니 부지런히 정진하라."

한산과 습득이 말을 마치고
굴 안으로 들어가자 굴문이 저절로 닫혔다,

자사 일행과 온 대중이 합세하여 돌문을
밀어 보아도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그 후, 사람들은 한산. 습득. 풍간 세 수행자를 일러
삼은 성자(三隱聖者)라 부르게 되었고. 한암굴 주변과

국청사, 마을 벽 등에 세 성자의 시(詩)들을
모아 삼은집(三隱集)에 담아 후세에 전했다.

복 받는날 이루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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