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지장기도로 원혼귀를 천도한 묘찬스님

갓바위 2020. 9. 22. 07:53
지장기도 원혼귀 천도 묘찬스님 

지금으로부터 150(서기 1819)년전의 일이다.
경북 김천(지금의 금릉군)에 직지사(直持寺)라는 절이 있었다.
이 절에는 묘찬(妙燦)이라는 대사가 있었다.

그는 어떤 객승(客僧)으로부터 함경북도 회령등지에
재가승(在家僧) 촌락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재가승이란 여진족들이 귀화하여 불상을 모시고 한 달에
몇 번씩 모여서 불공과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였다.
묘찬대사는 이들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 찾아가보았다.

그러다 그만 그곳의 여인에게 흠모를 받게되어
혼인을 하게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지만 이를 거절하고 돌아가니
그 여인이 자살하여 혼령이 되어 묘찬 대사를 찾아 직지사를 왔으나,

천왕문(天王門)에 이르러서는 무서워서
들어가지를 못하고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를 본 다른 스님이 묘찬대사에게 얘기하니 묘찬대사가
지장보살게 기도하고 천도재를 하여 주었더니,

묘찬의 꿈에 그 원귀가 나와 지장보살의
가피력으로 스님과 원수를 풀고간다하고 현몽을 하였다.
그 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한다.

[설화내용]

지금으로부터 150(서기 1819)년전의 일이다.
경북 김천(지금의 금릉군)에 직지사(直持寺)라는 절이 있었다.
이 절에는 묘찬(妙燦)이라는 대사가 있었다.

그는 어떤 객승(客僧)으로부터 함경북도 회령등지에
재가승(在家僧) 촌락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때에 남방사찰에는 재가승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거나 볼 수 없는 일이요,

이름조차 처음 듣는 일이라 묘찬대사는 그것들이 어떠한
존재인가 한번 가 보고 싶은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는 경기도와 강원도를 경유하여 함경북도로 들어갔다
그 때는 교통이 불편하던 때라 도보로 한 달 이상을 걸어서 들어갔다.

그 곳의 재가승이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나라를 귀찮게 굴다가 정복을 당하여 가지도 오지도 못한

여진족(女眞族)들이 귀화하여 함북 육진(六眞)
등지에 집단적으로 산재하여 살고 있게 되었는데,

그들은 대개 불교신자로서 5~6호의부락이 있는 가운데는
불당(佛堂)하나를 공동으로 지어서 불상을 모시고
한 달에 몇 번씩 모여서 불공과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불당을 지키는 봉향승(奉香憎)만은
남방에서 들어간 스님네를 청하여 담당하였다.

그런데 이 묘찬대사도 이러한 제도를 가진
불교촌락이 있다는 말을 듣고 구경삼아 들어간 것이다.

이 스님께서는 잠깐 동안 구경만 하고 되돌아 오려고 갔지만
어떻게 어름거리다가 봉향승으로 붙들려 있게 되었다.

그래서 한겨울을 지나는 동안에 재가승들과 친하여졌다.
그 재가승 가운데는 과년에 찬 딸을 하나 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처녀는 독신자인 봉향승 묘찬대사를 흠모하고
남편으로 삼겠다고 부모에게 졸라대고 자신도
이 스님을 사랑하고 유혹하기를 마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부모도 이 봉향승에게
장가들기를 권하기 시작했다.

묘찬대사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리둥절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청춘의 행락이 마음에 싫지는 않으나고승이 되려면 목적과
소원이 깨어져 달아나는 것 같아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승낙을 해요. 사람이라는 것은 젊어서
한때인데 독신으로 늙어 고부라지면 누가 상을 줄 것인가요.

남쪽 스님네가 들어오기도 많이 들어오지만
늙은 노장님네를 내놓고는 다 그럭저럭 이곳에서장가
들어서 아들 낳고 딸 낳고 재미를 보는 이가 많습니다.

유독 스님만이 아니니 쾌히 승낙을 하시오.
승낙만 하면 곧 혼인잔치준비를 하겠소.」한다.

묘찬은 옆에 앉아 있는 처녀를 힐끔 바라다보며,
「좀 기다려 주시오. 생각을 해봐서 승낙을 하오리다.」

하였더니,「응, 아주 마음에 없는 것은 아니로군.
기다리고 할 것 없이 곧 대례를 드리도록 합시다.」

이렇게 규수 아버지는 말을 한다.
묘찬은 하도 어이가 없는 일이라,

「혼인이라는 것은 인륜의 대사인데 그렇게 빨리
해 버리면 되겠습니까? 좀 생각을 해봅시다.」

「한 겨울 동안을 동네에서 같이 살아 왔으니까 그만하면
알아볼 것은 다 알아보았을 텐데 생각은 무슨 생각이오.」

규수아버지는 이렇게 쏘아 부치더니 딸을 보고,
「이제 내 할 일은 다 했으니
그 다음 일은 네 수단에 달렸다. 알아서 해라.」

하고 휙 나가버리고 만다. 이 때다. 처녀는 왈칵
덤벼들어 묘찬의 목을 얼싸안고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스님이 끝끝내 저와 혼인하기를
거절하신다면 저는 죽고 말테예요.」

하며 애원하는 것이다 묘찬대사도 젊은 남자이라
피가 끓어 오르고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경솔히 하지 마시오. 나도 남자요.
당신의 마음을 저버리지는 아니할 것이니 진정하시오.
누가 볼까봐 두렵소.」

묘찬은 이렇게 간신히 달래서 규수의 마음을 가라 앉히었다.
그리고 곧 혼인하기를 승낙할 것이라고 하였다.
처녀는 매우 좋아서 애교를 부리며,

「지금 승낙한 것인데 승낙할 것이란 것은 또 무슨 말입니까?
남방스님들은 말도 할줄 모른단 말야.하고 흉을 보았다. 묘찬은,

「이곳에 오래 있다가는 나의 신세를 버리겠구나.」
생각하고 그 날 밤에 도주하여 남방으로 내려와서
직지사의 선실로 들어가서 참선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처녀는 그 뒤에 묘찬을 원망하다가 자결하더니
원귀가 되었다. 그래서 묘찬에게 원수를 갚기 위하여

직지사를 찾아왔으나, 천왕문(天王門)에 이르러서는
무서워서 들어가지를 못하고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마침 어떤 남자스님이 나오다 보니까 웬 낯선 처녀가 말하되
「함경도에서 나온 묘찬스님이 이 절에 와있지 않습니까?」

고 물으며, 그 스님을 빨리 내보내서 만나게 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스님이 지금 절 안에 있으니 들어가서 보시오.」한 즉,

「나는 사람이 아니고 귀신인데 저 천왕님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한다.

그래서 그 스님은 이상하게 여기고 들어가서
묘찬에게 이 말을 전하였더니, 묘찬은

[저를 버리고 가면 자살을 하겠다고 하더니
참말로 자살을 해서 귀신이 되어가지고 왔구나.]

생각하고 가슴속에 공포심을 품고천왕문에
나와서 사천왕(四天王)에게 절을 하고 축원하되,

「원귀를 7일만 꼭 붙잡아 두시고 발동하지 못하게 하시옵소서.」
하고 간곡히 축원하고 다시 절에 들어가서 7일간을 정하고

지장보살께 기도를 하고 천도재를 하여 주었더니,
묘찬의 꿈에 그 원귀가 나타나서,

「나는 지장보살의 가피력으로
스님과 원수를 풀고 가오니 그리 아시오」

하고 현몽을 하였다.
그 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한다.

<曺溪寺刊靈驗錄>

복 받는날 이루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