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점심 먹는 사람들을 위한 시
한낮에 기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만큼은 사이가 좋았다.
“사이좋다 라고 붙여 쓰는 이유가 뭔 줄 알아? 사이가 좋으니까.”
실없는 농담에도 실실 웃음이 났다. “실이 두 개나 있네?”
듣고 바로 이해하지 못해도 넘어갈 수 있었다.
아까는 배고프다는 핑계로, 지금은 배부르다는 이유로.
벤치에 나란히 앉아 두 시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늘어졌다.
“나는 전생에 눈썹달이었나 봐. 이 시간만 되면 나른해져.
찬물도, 커피도, 냉커피도 소용없어.“ “아이스커피?” “응, 냉커피.”
삐죽 튀어나올 수도 있는 말은 굳이 덧대지 않았다.
얼음만 있으면 되니까. 차가우면 그걸로 족하니까.
눈을 감았다 뜨면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것 같았다.
“실은 나도 그래.” 하품을 하다 말고 눈썹을 치켜들었다. “실을 또 찾네?”
“괜찮아. 눈썹은 두 개니까” 독백이 모인다고 해서 대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날이 밝다고 다 한낮인 것은 아니므로, 각자의 말만 한다고 섭섭하지도 않다.
어디 말할 데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공원에 사람들이 많았다.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햇살이 푸지면 나를 조금 덜 미워하게 된다.
행이 많아서 복권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시간과 사이가 좋았다. 사이가 두 개나 있었다.
-오은의 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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