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음은 비어 있음이 아니다
옛 어른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 줄 알았다.
또한 자연이 주는 혜택을 슬기롭게 잘 쓸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옛 것은 낡은 것이고 모자란다고 여기면서
조상들이 남겨놓은 드나듦 길, '비움' '틈새' 쓰임새를 몰랐다.
그래서 남은 공간만 있으면 채우고 열린 곳이 있으면 그저 꽉꽉 틀어막았다.
우리 조상들이 지녔던 슬기를 내동댕이쳤다.
자연과 더불어 나누고 드나드는 슬기를 까맣게 잊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신비를 느끼고 맛보려고 들지 않고 자연을 조이고 옥죄려고 들었다.
하지만 사람도 역시 자연인지라 그렇게 틀어막은 속에서 답답함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틈이 없는 빡빡한 삶은 견딜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마치 보도블록 새를 뚫고 돋아난 풀꽃처럼 틈을 내기 시작했다.
덜어내고 비워내는 일이 숨통을 틔우는 일이라는 걸 새삼 절감하게 됐다.
너절하게 널브러진 것을 덜어내고 막힌 것을 뚫는 작업을 시작했다.
비우고 내려놓음 뺄셈 철학이다.
요즘엔 어느 종교나 비우고 내려놓음을 내세우지만, 비우고 덜어내는 일은 본디
절집 풍습이다. 들어내고 비우는 일이란 너절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치움은 비움이다. 비움은 내려놓음이다.
안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음. 내려놓음은 칼날 세움이다.
칼날 세움은 칼을 가는 일. 칼이 칼답게
제 노릇을 할 수 있으려면 그 날이 시퍼렇게 서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날선 칼을 오랜 타성과 번뇌를 가차없이 끊어내는 반야검이라 부른다.
서슬 푸른 칼날을 지니지 않으면 남은커녕 제 자신도 구제할 길이 없다.
삶은 이렇게 서슬 시퍼런 칼고 끊어냄과 비워냄이
어우러져 한 켜 한 켜 쌓아갈 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에 걸쳐 살다간 마조 법을 이은, 방 거사는
본디 소문난 부호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 온 재산을 배에 싣고 바다에
나가 미련 없이 버린다. 온 재산을 바다에 버리기에
앞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까도 생각해본다.
하지만 자신도 버리려는 짐스런 재산을 남에게 떠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 실행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뒤 조그만 오두막에 살면서 대조리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아 목숨을 이어가며 딸과 함께 평생 수도생활을 한다. 그가 남긴 게송이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지만
나는 순간 고요를 즐긴다
돈은 사람 마음을 어지럽히고
고요 속에 본디 내 모습이 드러난다.
덜어내고 비워낸 끝에 얻은 고요, 적막함 그 안에 본디 모습이 드러난다.
그는 그렇게 고요 속에서 꽈 채워진 텅 빈 충만 앞에 섰다.
고요적적, 그 빈 탕 안에 담긴 여여함이다.
법정 스님은 오래전부터 '텅빈 충만'이라는 표현으로 버리고 떠나는
무소유 사상을 펴셨다. 선택한 가난, 청빈야말로 덜어내고 비워내는
뺄셈이 지닌 아름다움 극치다. 그 느낌을 잘 나타내는 풍경이 잎을
다 떨구고 몸만 남은 나무를 보는 겨울이다.
겨우 살아가기 때문에 겨울이라나.
적조함이 도는 겨울나무 숲은 본질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벗어난 길. 비움 길. 이 겨울. 여백미를 마음껏 느끼는 텅 빈 충만을 만끽해보자.
비어 있음은 비어 있음이 아니다.
숨결 변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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