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바라밀
불교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교를 믿으면 세상을 버리고
처자식을 멀리하며, 명예와 재산을 포기해야 하는줄 압니다.
불교가 마치 일체에 미련을 둘 가치가 없다고 가르치는 양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불교에 대한 오해입니다.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세상만사 어느 것에 대해서든
한결같이 이성과 지혜의 힘을 써야 합니다. 정확한 인식 아래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도 없고 지타치게 냉담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집착하면 세속적인 감정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면할 수 없고,
반대로 너무 냉담하면 외롭고 소외되어 세상을 등한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대승불교의 수행은 중도中道입니다. 이른바 '불법의 세간에 있다.
세간을 떠난 깨달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은 정확히
세간을 인식하고, 일상생활 속에 불교의 사상을 아우러지게 하고 불법을
기준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욱바라밀六波羅蜜 수행입니다.
육바라밀은 육도六度라고도 하는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출세간의 법입니다.
곧 보살은 불도를 닦아 깨달음을 구하고 아울러 뭇 중생을 교화하는 이이니,
세속을 떠난 높고 깊은 수행으로 세속의 중생을 도와 이롭게 하고,
육바라밀로 삶의 도리를 삼습니다. 그럼 무엇을 육바라밀이라고 하는 걸까요?
첫째, 보시행布施行을 닦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색함과 탐욕을
없앨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은혜와 이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지계행持戒行을 닦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계를
범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에게도 계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셋째, 인욕행忍辱行을 닦는 것입니다.
자신이 노하거나 성내지 않을 뿐 아니라 남을 성내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넷째, 정진행精進行을 닦는 것입니다. 자신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 뿐더러, 게으름을 피우지 않도록 다른 사람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다섯째, 선정행禪定行을 닦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번뇌로 인하여
정신을 어지럽게 하지 않은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도록 깨우치는 것입니다.
여섯째, 지혜행智慧行을 닦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어리석고
인과의 도리를 부정하는 망견妄見을 갖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깨우치는 것입니다.
한 불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육바라밀을 열심히 닦을 수 있다면, 육바라밀로서
자기 생활의 테두리로 하고 다시 육바라밀을 사회 속에 깊이 들여와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면, 육바라밀이 곧 인생 최고의 선행이 됩니다.
육바라밀 가운데서 지계, 선정, 지혜 세 가지를 바로 계정혜 삼학이라
하는 데, 이것으로 탐내고 성내며 어리석은 세 가지 독소를 다스릴 수 있으며,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을 억제시킬 수 있습니다.
계를 지켜나간다면 자기 한 몸만의 이익을 꾀하지 않고,
자기한 몸만의 이익을 꾀하지 않으니 곧 탐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선정禪定에 든다면 사람에게 해를 주는 일이 없으며, 해를 끼치지 않으니
노하지 않고 번뇌에 어두워지지 않으니 어리석음에 물들지 않습니다.
탐진치를 없애고 보시바라밀을 행하면 자비심이 자연히 생겨나고, 인욕바라밀을
행하면 굳고 강한 정신이 갖춰지며, 정진바라밀을 행하면 용맹한 힘이 우러나
모든 일에 충실해집니다. 이것이 이른바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며, 내가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니 곧 대승 불법의 기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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