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터는 어디인가
스포츠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중계를 보는 것과는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1984년 스페인에서 열린 프랑스와 독일 월드컵 4강전 장면이 담긴 다큐멘터리
를 보면서 중계였다면 절대로 알 수 없었던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 · 일 관계 못지않은 라이벌전인 만큼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에서 프랑스는
3:1로 이기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선수들이 모두 '이제는 결승전 진출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후반전 독일은 두 골을 넣어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한껏 고양된 독일 선수들은 승부차기로 승리를 낚아채 버렸죠.
패배가 결정되는 순간, 프랑스 선수들은 어깨를 떨어뜨린 채 힘없이,
애써 태연한 얼굴로 경기장을 빠져나갔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그렇게 걸어 나간 선수들 뒷모습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는 탈의실로 들어서자마자 씻을 생각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엉엉' 한참을 울었다. 문뜩 '아! 눈물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지.'
하며 새삼 뭉쿨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무 데서나 울 수 없는, 어른이 된 뒤부터는 그렇게 정말
뼈아픈 후회나 아픈 눈물들은 사람들이 보지 않게 은밀한 곳에서
처리해야 할 어떤 것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 라디오 프로그램 FM 가정음악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라서 기억 저장고에 꼭꼭 매뒀었는데,
오늘 아침 출근길 갑자기 떠올랐다.
눈물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열하일기'에서 연암 선생이 1천2백리에
걸쳐 한 점 산도 없이 아득히 펼쳐지는 드넓은 요동벌판을 보고
그 장대한 스케일에 압도되어 터뜨린 일성이 생각난다.
"아, 참 좋은 울움터로다. 가히 한 번 울 만하구나."
이에 어리둥절해하는 일행 정지사 물음에 이렇게 답하는 대목이 나온다.
"천고 영웅이나 미인이 눈물이 많다 하나 그들은 몇 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
을뿐,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서 금석으로부터 나오는 듯한 울음은 울지 못했다.
그런 울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사람이 다만 칠정七情 가운데 슬플 때만 우는 줄 알고,
칠정 모두가 울 수 있음을 모르는 모양이오.
기쁨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사랑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치면 울게 된다.
불평과 억울함을 풀어버림에는 소리보다 더 빠름이 없고,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이다. 지정至情이 우러나오는 곳에는,
이것이 저절로 이치에 맞을진대 울음이 웃음과 무엇이 다르리오."
-도강록
그것이 기쁨이던 감정이 극치에 이르면 북받쳐 오르는 게 울음이라는 말이다.
이어서 연암은 "아기가 태 속에 있을 때 캄캄하고 막힌 데다 에워싸여
답답하다가, 넓고 트인 곳으로 쑥 빠져나오니 사지가 쭉 펴지고 가슴이
확 트여 어찌 그 기쁜 고고성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어둠 에서
빛 경계로 들어서는 순간 환희심이 그토록 울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충무공 이순신도 많이 울었다. 백의 종군 길, 정유년 4월 13일
어머니 상을 당하지만 그는 어머니에게 갈 수가 없었다.
그날 일기는 참으로 비통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일찍 식사 뒤 어머니를 마중하려고 바닷가로 나갔다."
"······ 아직 배가 오는 소식이 없다고 했다······."
"얼마 뒤 종 순화가 배에서 내려 어머니 부고를 전했다."
"뛰쳐나가 가슴을 치고 슬퍼하니 하늘에 뜬 해조차 캄캄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이루 다 적을 수가 없다. 뒷날에 적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울고 싶은 때가 있다. 하지만 정작 다른 이 눈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실컷 울 곳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남자는 더욱 그렇다.
건축가 김중업은 "집 어느 구석에서든 울고 싶은 데가 있어야 한다."며
집을 지을 때 꼭 울 곳, 울음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울음은 대체 무엇인다. 우리는 특히 남자들은 '울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젖어 살았다.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 소변기 앞에 붙어 있는
표어가 나를 흥분시킨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이 표어를 볼 때마다 울음을 틀어막는 이 사회가 지닌 무지無知에 기가 막힌다.
사람은 울어야 한다. 울어야만 한다.
우는 일은 순수하게 자신을 맑히는 행위다.
"불평과 억울함을 풀어버림에는 소리보다 더 빠름이 없고,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이다."는 연암 선생 말처럼
기쁨이 사무치든, 그리움이 사무치든, 노여움이 사무치든 울어야 한다.
울음으 참으면 가슴이 막힌다. 가슴이 열리고 트여야 세상이 건강해진다.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자. 당신 울음터는 어디인가.
숨결 변택주
'卍 불교 교리 강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 (0) | 2023.11.10 |
---|---|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0) | 2023.11.10 |
보살도의 실천 (1) | 2023.11.09 |
고양이는 야옹, 개는 멍멍 (0) | 2023.11.09 |
오! 늘 좋은날! (0) | 2023.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