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담 스님의 일생
1960년경, 교계에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노스님 한분이 부산 범어사에서
열반에 드셨읍니다.스님의 성은 황씨(黃)요.
법명은 하담(河 潭)으로, 19세에
금강산 장안사로 출가하여 오로지 `
나무아미타불`만을 염송했습니다.
스님은 앉으나 서나 `나무아미타불`을 외웠고,
일할때도,밥먹을 때도 `나무아미타불`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10여 년이 넘자
대화를 나눌때도, `나무아미타불`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잠을 잘 때도
`나무아미타불`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하담스님은 30대 중반의 나이에
무량한 광명을 보고 견성(見 性) 을 하였고,
무량한 빛과 무량한 진리를 체득한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여 금강산에서 하산을 했습니다.
모든 중생들에게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이 거룩한단어 하나를 귀에 넣어줌으로써
중생들의 업장을 녹이고 죄업을
소멸시켜주고자 서울로 온 것입니다.
스님은 일제 강점기의 극장 선전원들이
사방에 영화 포스터를 붙인 통을 뒤집어 쓰고
거리를 활보 했던 모습과 같이, 앞에도
`나무아미타불` 뒤에도 `나무아미타불`을
써서 붙였고, 그것도 모자라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쓴 깃대를 등에 지고
커다란 목탁을 치며 하루종일 `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했습니다.
스님은 서울의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웠습니다.
사람들의 귀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소리를 듣고,
눈으로`나무아미타불`이라는 글자를 보기만
하여도 그만큼업장이 소멸되고공덕이
생겨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극락세계와 아미타불에 대한 법문을 들려주었고,
때로는 염불을 통한 업장 참회법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5년, 스님은 어떻게 술을 알게 되었고,
술을 입에 대자 대중스님들로부터 막식막행승
(莫食莫行僧)으로 취급받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절에서는 곡차를 한다는
이유로 들어오지 못하게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뼈 속 깊은 곳까지
부처님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어떠한 구박에도 동요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는
`감사`보다 `축원`을 했습니다.
술을 좋아하신 분이라, 길을 가다가
목이 컬컬해지면 주막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목을 축언 다음 주인을 향해
합장 반배하면서 축원합니다.
"이 공덕으로 다음에 부처가 되십시요."
또 절 앞에 와서 술과 음식을 벌여놓고
노는 사람들이 스님을 향해 희롱조로 말을 겁니다,
"스님, 한잔 하실라오?"
"어, 거 좋 ㅡ지." 그들이 내미는 술을 거침없이
들이키면 사람들은 장난 반, 놀림 반,
농담 반으로 질책을 합니다.
"스님, 곡차를 드셨소? 술을 드셨소?"
"술을 마시는 것을 보니 중이 아니구먼!"
하지만 스님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합장배례하며
"이 공덕으로 다음에 부처가 되십시오."
이렇게 `부처`되라는 한마디 축원으로 일관했던
하담스님은 말년을 범어사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범어사는 당대의 대율사인 동산(東山)
스님이 조실로 계시고, 계율이 엄한
사찰이므로 곡차를 좋아하는
하담스님을 반길 까닭이 없었습니다.
오직"범어사에서 살고 싶으면 머물게 하고,
가고 싶으면 가도록 내버려두어라"는
동산스님의 지시 덕분에 범어사에 머물 수
있게 되엇지만, 대중들과 함께 하는
큰방에서의 생활이나
공양은 허락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담스님이 범어사
총무스님을 불렀습니다.
"석달 후에 내가 가야 되겠소
하지만 총무스님은 농담처럼 들었습니다.
딴 곳으로 간다는 말씀인지 ,
세상을 하직 한다는 말씀인지조차 되물어
보지 않고 그냥 무심하게 흘러버렸습니다.
그 뒤 가신다고 약속한날 꼭 일주일전에
총무스님을 다시 방으로 불러 꼬깃꼬깃
모은 10원짜리, 100원짜리로 6만원을
건네주면서 부탁했습니다.
"나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네, 경책(經 冊)
한 권도 없고,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농짝하나, 땅덩어리 하나도 없어,
이게 전부니까 어려운 절 살림에 보태쓰게."
그리고는 양말 속에 넣어두었던 3만원을
따로 내어놓으며 말했습니다.
"이 돈이면 내 초상 비용은 될꺼야."
하담스님은 가시겠다고 한 하루전날,
손수 향나무를 넣어 달인물로 목욕을 하고
미리 마련 해둔 수의(壽衣)로 갈아 입은 다음
깨끗한장소를 골라 자신의 옷을 모두 태웠습니다.
'3개월 후에 가겠다'고 했을 때에는 농담처럼
들었던 총무스님도 하담스님의 이상한 행동에
경각심을 일으켜, 가신다고 한 날 이른 새벽부터
세 명의 젊은 승려들로 하여금 스님 곁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가야할 시간이 되었구나."
" 그때 곁에 있던 젊은
스님이 짖굿게 말을 던졌습니다.
"스님, 지금이 법당에서 마지 올리는
시간인지 모르십니까?
어찌 중이 되어가지고 부처님께 마지 올리는
시간에 가시려고 하십니까?
"허, 듣고보니
그 말씀도 옳구려, 나를 일으켜주시오."
앉은 채로 고요히 열반에 들고자 했던 하담스님은
젊은 승려들의 부축을 받아 법당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법당한 옆에 단정히 앉아 부처님께
올리는 사시마지가 끝났고, 스님은 옆에
있는 승려에게 부탁했습니다.
"이제는 할 수 없소. 나 좀 눕혀주소."
주위 승려들의 도움으로 반듯이 누운 하담스님은
조그마한 음성으로 게송을 읊었습니다.
원공법계제중생 願共法界諸衆生
자타일시성불도 自他一時成佛道
원컨데 법계의 모든 중생 너와 나
할 것 없이 일시에 모두 성불하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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