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샘의 참외
<화순·학다리>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땀을 식힐 정도로
시원한 샘물이 전라도 화순 고을에 있었다.
이름하여 「자치샘」.
이 고을 사람들은 역경에 처하거나
불행을 만나면 으레 샘물을 정화수로 떠놓고
신령님께 소원을 빌었다.
고려 말엽 이 고을에
조씨 성을 가진 한 상민이 살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양반의 말에 대꾸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에게는 품행이 조신하면서도 미모가 특출한
분이라는 외동딸이 있었다.
아직 출가 전인 그녀의 효심은 지극했다.
분이는 아버지가 옥에 갇히자 날마다 첫새벽이면
이 자치샘의 정화수를 길어다
신령님께 아버지의 석방을 축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의 어둠 속을 더듬으며
샘터에 다다라 보니 웬 중년 부인이 자기보다
먼저 와 있는 것이 아닌가.
분이는 내심 아버지를 향한 자신의 정성이
부족한 듯싶은 자책감에
내일은 더 일찍 오리라 다짐했다.
다음날 새벽. 분이는 어제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섰다.
캄캄한 산길을 무서운 줄도 모르고
걸음을 재촉해 자치샘에 당도하니
뜻밖의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큰 참외 한 개가
둥둥 샘물 위에 떠 있는 게 아닌가.
『으응? 웬 참외일까? 간밤에 누가 따다 넣은 건가,
아니면 나보다 먼저 누가 다녀갔나?』
분이는 이 참외를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새벽 공기를 울리며 이상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소녀여, 참외를 먹어라. 그 참외는 너 먹으라고
놓아둔 것이니 주저치 말고 어서 건져 먹어라.』
분이는 깜짝 놀라 말소리가 들리는 곳을
돌아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필경 산신령의 계시인가 보구나. 왜 먹으라고
했을까. 아무튼 먹으라고 하시니 먹어야지.』
분이는 조심스럽게 참외를 건져 먹고는
여느 날처럼 물을 길어 가지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 분이는
그날부터 태기가 있더니 배가 불러오는 것이 아닌가.
처녀가 아기를 잉태하다니.
실로 기막힐 노릇이었다.
분이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생죄인이 되고 말았다.
달이 차자 분이는 옥동자를 순산했다.
그녀는 견딜 수 없는 수치감 때문에 아이를
기를 수 없다고 생각하여 솜보자기에 아이를 싸서
지금의 학다리 마을 근처 논두렁에 버렸다.
다음날 저녁, 이곳을 지나가던 한 길손이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고 걸음을 멈췄다.
커다란 학 한 마리가 이상한
물건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이하게 생각한 길손은
학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사람 기척이 나자 학은 날아가고
그 자리엔 갓난아기가 솜에 싸여 있었다.
『아니 이건 어린아기가 아닌가?
못된 것들, 천벌을 받을 줄 모르고.』
길손은 아기를 안고 관가로 갔다.
그는 원님 앞에 나아가 자초지종을 아뢰었다.
『소인이 먼 길을 다녀오다 논두렁가에서
이 갓난아기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옥동자를
학이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인이 가까이 다가가자 학은 날아가고
제가 이 아기를 데려오게 된 것입니다.』
『허어! 학이 품고 있었다고. 필시 이 아이가
자라면 장차 비범한 인물이 될 징조로구나.
이방은 이 아기의 어미를 찾아 데려오도록 해라.』
마침 슬하에 손이 없던 길손은 이 아기가 장차
크게 될 인물이라는 원님의 말에 자기가 기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님께 간청했다.
『소인이 자식이 없어 적적하오니
이 아기를 기르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음 그렇다면 분부 있을 때까지
우선 데려다 기르도록 해라.』
길손은 어린아이를 안고 돌아갔고,
이방은 아기 어머니를 찾아나섰다.
이방은 아기 어머니 분이를 쉽게 찾아 관가로 데려왔다.
분이는 원님 앞에 대령하여 국문을 받기 시작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은 죄,
벌하여 주옵소서.』
분이는 원님의 분부를 기다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아기를 낳게 된 연유를 소상히 아뢰어라.』
원님은 아기가 비범치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관대한 어투로 물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소녀의 아버님은
양반에게 말대답을 했다는 죄로 한산리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아버님의
방면을 축수하느라 새벽마다 자치샘으로
정화수를 길러 다녔는데 어느 날 샘물 위에 떠 있는
참외를 신령님 분부로 먹었습니다.
그날 이후 배가 부르기 시작하여 아기를 낳게 됐습니다.』
『음, 예사로운 일이 아니로구나.』
『원님, 간청하옵나니 죄 없으신 저의 아버님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방면하여 주십시오.』
『음, 네 효심이 정녕 갸륵하구나.
알겠으니 염려하지 말아라.』
딸의 효성으로 조씨는 옥살이를 벗어났다.
이 소문이 고을에 퍼지자 마을 사람들도 분이의
효심을 산신령이 가상히 여긴 것이라며, 학이
아기를 품고 있던 곳을 학다리 마을이라 불렀다.
한편 그 옥동자는 길손의 집에 가서 잘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순하고 총명하여 남의 이목을
끌더니 성장해서는 출가하여 스님이 됐다.
그 스님이 바로 송광사 16국사 중의
초대국사인 불일 보조국사라 한다.
그러나 영암 구림리에서는 시내에 떠 있는 오이를 먹고
도선국사를낳았다는 등 비슷한 전설이 간혹 전한다.
이는 여자의 성숙기 16세를 뜻하는
「파과지년(破瓜之年)」이란 말의 「과」
자에서 비롯된 듯하다는 설도 있다.
과 자를 중심으로 해자(解字)하면 두 개의
팔 자가 된 데서 16세를 뜻한다.
전설과는 달리 지눌 보조국사는 1158년 황해도
서흥(당시의 동주)에서 국학학정을 지낸
정광우와 부인 조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다.
어려서 몸이 허약했던 이 아이는 부모의
지극한 정성으로 8세 때 건강을 회복했다.
아버지 정씨는 아들 건강회복을 위해 부처님께
출가를 시키기로 발원하며 기도했다 한다.
그래서 이 아이는 건강이 회복된 8세 때
종휘선사를 찾아가 출가한 뒤 26세 때 승과에 합격했다.
그 후 스님은 조계산 송광사에 정혜사를 개창하고
정혜결사 정신을 꽃피워 우리 역사의 종교적 거성이 되었다.
- 불교설화(佛敎說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