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흑룡의 여의주

갓바위 2018. 8. 24. 09:51
흑룡의 여의주

권대감의 딸이 세도가 
민대감의 삼대독자에게 
시집가던 날, 
온 장안이 떠들썩했다. 
세상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시집을 간 신부는 부귀영화로 
가득 찬 시댁이 밤이나 낮이나 
웃음뿐인 줄 알았는데 
근심 걱정도 있다는 걸 알았다. 
신랑이 결혼 전에 벌써 일곱번
이나 과거에 낙방한 것이다. 
설상가상, 혼인한 지 1년이 
가까워지자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다. 
시댁 식구 모두가 새신부 배를 
뚫어지게 보는데 아직 입덧조차 
없으니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손발이 찬 신랑이 공부한답시고 
별당에 독거하며 가뭄에 
콩 나듯이 신방에 오지만, 
신부의 옷을 벗기고 껍죽껍죽
하다가 도망치듯이 별당으로 
돌아가곤 해 신부는 자신의 
배 속에 아기가 들어서지 
않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설 준비에 집안이 부산하다고 
신랑은 책보따리를 싸 들고 암자로 
들어가고, 밤늦도록 부엌에서 
일을 한 새색시가 빈 신방에 
들어와 쓰러져 잠이 들었다. 
문이 홱 열리고 일진광풍이 불더니 
눈을 부릅뜬 흑룡이 새색시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 여의주를 
옥문 속으로 밀어 넣고 굽이쳐 
밖으로 나가 하늘로 치솟았다. 
새색시는 벌떡 일어나 손을 
넣어 흥건히 젖은 옥문을 
만져 보니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용꿈을 꾼 날 잉태를 하면 
그 아들은 장차 천하를 호령하는 
큰 인물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새색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새벽닭이 울면 용꿈은 물거품이 
되는데, 신랑은 삼십리나 
떨어진 암자에 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될 건가? 
권대감의 딸, 새신부는 
안절부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냉철하게 곰곰이 
생각한 후 만물이 잠든 삼경에 
장옷을 덮어쓴 채 신방을 나서서 
고양이 걸음으로 뒤채에 있는 
젊은 총각 집사의 방으로 갔다. 
인기척에 잠을 깬 집사는 깜짝 
놀랐다. 새신부가 장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젊은 
집사의 품에 안긴 것이다. 
살과 뼈가 타듯이 격렬한 합환이 
세차례나 이어진 후 새신부가 
신방으로 돌아와 자리에 
눕자 꼬끼오 새벽닭이 울었다. 
집사의 작고한 아버지는 
신부의 아버지 권대감, 
그리고 시아버지인 
민대감과 절친한 친구였다. 
집사의 아버지 이대감이 사화에 
휩쓸려 목숨을 잃지 않고 
그 집안이 망하지 않았다면 
권대감의 딸은 집사의 신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설이 지나고 친정에 간 신부는 
오빠에게 패물보따리를 전해 주며 
사람을 시켜 감쪽같이 
집사를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후 용인에 심부름 갔던 
집사는 사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민대감댁 하인들이 몇날 
며칠을 찾아다녀도 허사였다.
열달 후 새신부는 달덩이 같은 
아들을 낳았고, 세월이 흘러 
그 아들은 장원급제를 하고 
민대감댁 가세는 더욱더 흥했지만 
민대감 며느리 가슴속에 맺혀 있는 
죄책감은 해가 갈수록 커져만 갔다. 
삼천리 방방곡곡 절과 암자를 
찾아다니며 집사의 
극락왕생을 빌고 또 빌었다.
구월산 억수암에 발길이 닿은 
민대감 며느리가 스님과 눈을 
마주치자 잘못 본 것이 아닌가 
눈을 씻었지만 틀림없는 
그 사람, 죽은 집사였다. 
스님은 태연했다. 
“스님,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삼라만상, 닮은 사람은 많지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때, 오빠는 어릴 적 서당 
친구인 집사를 죽이지 않았고, 
친구에게서 패물보따리를 
건네받은 집사는 
멀리멀리 사라졌던 것이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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