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잡혀가는 국사범

갓바위 2018. 10. 4. 17:35
잡혀가는 국사범

정주 기생, 오화춘이 어느 날 밤 
낯선 손님 하나를 받았다.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밤에 
비에 젖은 선비가 도화옥을 
들어서는데 허우대가 멀쩡하고
 이목구비는 뚜렷하다. 
촛불 아래서 낙수 소리를 들으며 
오화춘과 나그네는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셨다. 
대개 기생집에 와서 술 마시는 
남자는 자기 근본을 치켜세우며 
호기를 부리게 마련인데 이 남자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어딘가 모르게 무엇에 
쫓기는지 찬모가 안주를 들고 
와도 경계의 눈빛이 역력하다.
그날 밤, 오화춘은 나그네를 잡았다. 
둘은 궁합이 맞아 밤새도록 
운우의 정을 나눴다. 
새벽녘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나그네는 낭패의 기색을 보이며 
넉넉하게 술값을 치르고 나서 물었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뒷방에 머물렀다 갈 수 없겠소?”
오화춘은 웃으며 말했다. “
서방님이 원하시면 한평생이라도
그날 밤 떠나려는 나그네를 오화춘은 
또 잡아 앉히고 술상을 차렸다.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금침을 깐후 
오화춘은 진하게 육탄공세를 퍼부었다. 
오화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가벗은 그대로 나그네 품에 안겨 
베갯머리송사로 물었다.
 “서방님 도대체 무얼 하는 사람
이며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나그네는 마침내 말이 새지 말 것을 
신신당부한 끝에 자신은 역적모의를 
하다 수배받고 있는 
국사범이라는 걸 털어놓았다. 
나그네가 잠든 사이 오화춘은 곧바로 
사또에게 달려가 고발해버렸다.
꼼짝없이 붙잡힌 이 자는, 순순히 체포돼 
가는 품이 만사를 체념한 것 같았다. 
도중 호송군관에게 코 아래 진상을 
잘해 행동은 비교적 자유로워, 
마지막 작별인사나 하게 해달라고, 
거쳐 가는 고을의 점찍어 놓았던 
부잣집마다 저의 
친척이라며 찾아들었다. 

모두가 보니 군관에게 겹겹이 
둘러싸여 끌려가는 중죄인인데, 
물론 주인하고는 생면부지다. 
영결하는 자리니 단둘이 만나게 
해달래 가지고는 부잣집 
주인에게 협박을 한다.
“나는 국사범으로 이번에 가면 
죽는 몸이야. 네놈을 연루자로 
끌어넣을 테다.”
가만있다가는 대단한 곤경을 치를 
모양이라, 별도로 흥정이 오갔다. “
평양 아무에게로 몇천냥 표를 
써줄 터이니 제발 그러지 마시오.”
이렇게 받아낸 여러 장의 돈표를 
동지를 시켜 현금으로 받아 
챙겼을 때쯤, 호송행렬은 
평양에 닿았다.
감사가 잡아들여보니, 
이런 죽일 놈이 있나? 
감사의 종질로 집안의 종손이다.
노름판에 쫓아다니고 이 과부 
저 과부 꼬아서 빌붙어 살고 
부자 등쳐먹는 소문난 사기꾼으로, 
역적이고 충신이고 국사에 끼어들 
인물이 될 수 없는 녀석이다. 
감사는 그놈이 사기를 친 줄 
뻔히 알지만 잘못하면 집안의 
치부가 드러날 것 같아 우선 옥에 
가두어두고 국사범이 아니란 걸 
밝힌 후 곤장 열대를 때려 내보냈다. 
하여튼 스스로 국사범이 되어 
잡혀가는 중죄인으로 꾸며서 
한탕을 친 솜씨는 대단해 감사는 
혀를 찼다. 사기당한 부자들은 
아무도 고발해오지 않았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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