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허진사댁 잔치집

갓바위 2018. 10. 30. 10:19
 허진사댁 잔치집

오늘은 충청도 천안고을에서 
허진사댁 둘째딸이 시집가는 날이다.
봄기운이 완연하여 아지랭이가 
피어나는 날.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족두리를 쓰고 
연지곤지 찍은 신부와 
사모관대를 쓴 신랑을 
보겠다고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천석꾼 부자집이라서소 한마리 
돼지 세마리 잡고 해산물은 
바리바리 실려와 뒤뜰에서는 
가마솥이 걸리고 장작불을 지펴 
쇠고깃국이 설설 끓고,
뒤집어 놓은 솥뚜껑위엔 부침개가 
노릇노릇 익고,과방에는 떡과 
고기와 과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참고 : 과방(果房)이란?
큰일을 치를 때 음식을 차려 놓고 
저장했다가 내가도록 하면 
그장소가 과방이 됨*
혼례식이 끝나자 사랑방엔 허진사네 
집안 어른들과 사돈댁 어른들이 
이어 놓은 음식상을 마주한 채 
술잔이 오가고 아낙네들은 안방에 
자리 잡고 손님들은 안마루 
바깥마루에 넘쳐 안마당 뒷마당 
멍석 위에도 와글거렸다.
해가 저물어도 여기저기 횃불을 
밝히고 노래판 춤판이 이어졌다.
이렇게 좋은 날에 잔칫집에 
손님은 하객들 뿐이겠는가?
과거에 떨어져서 낙향하던 
낙방선비들도 이 동네엔 
주막이 없다는 걸 알고 
허진사네 잔치집으로 흘러들었다.
잔치상 소반을 받아 게눈 감추듯 
비우고 나자 동네 젊은이들이 
소매를 당겨 술판에 끼게 되었다.
동네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인 
듬직한 체격의 백면서생은 새신랑과 
어울려 술잔을 부리나케 오갔다.
술판은 삼경이 지나도록 이어지더니 
모두가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고 
여기저기 불 밝히던 관솔불도 하나둘 
저절로 꺼지자 흐지부지 파장이 되었다.
두주불사 과객들중에 젊고 듬직했던 
선비 이생도 술이 취해 소피를 보고 
난 후 볏단 뒤에 주저앉았다가 
비스듬이 쓰러졌다. 
허진사네 집사와 행랑아범이 
호롱불을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신랑을 찾고 있었다.
“여기 쓰러지셨네.”젊은 선비를 
일으켜 세운 두사람은 
선비를 부축해 옷의 지푸라기를 
털고는 신방에 넣어 줬다.
선비는 신부가따라 주는 합환주를 
마시고 신부의 분냄새에 
이끌려 옷고름을 풀었다.
어린 새색시야 똑바로 신랑을 
쳐다본 적도 없어 신랑이 
하는데로 그냥 몸을 맡겼다.
이 여자가 기생 춘심인가 
주막집 주모의 딸이던가?
비몽사몽간에 과객 선비는 
운우에 빠져들었고,
허진사 둘째딸은 초야를 치뤘다.

닭이 울고 난 새벽,밖에서 잠가 놓은 
과방 속에서 꽝꽝 소리가 요란하게
“문 열어 주시오”하는 고함이 들려 
열쇠를 찬 새신부의 막내삼촌이 
과방 문을 열었더니 웬 미친(?)놈이 
비틀거리며 나오더니신방이 
어디냐고 소란을 피웠다.
진짜 신랑이 술에 취해 과방에 
들어가 술좀 깨우려 식혜를 마시고 
쓰러졌다가 새벽녘에야 
정신이 들어 나온 것이다. 
집안이 발칵 뒤집혀졌다.
한편! 신부는 잘생기고 듬직한 
가짜 서방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설레임으로 지난밤을 하얗게 샜다.
가짜(?) 새신랑이 포박을 
당했을 무렵,날이 샜다.
진짜신랑은 김이 샜다 새색시는 
까무러치고 허진사의 안방마님도 
혼절하고 진짜 새신랑은 털썩 
주저앉고 흥분한 허진사는 안방에서 
번쩍이는 장도를 빼들고 나왔다.
포박당한 가짜 신랑이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세상사가 요지경이라고 하지만~ 
어찌하여 일이 이렇게도 기막히게 
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소인의 계략이 아닙니다.
그렇지만소인은 죽더라도 새신부는 
한평생 멍에와 한을 지고 살 것입니다.
새색시를 제게 주십시오. 
그것만이 모두가 사는 길이오!”
그때 사랑방 문이 열리고 80대 
나이의 새색시의 조부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와서는
“백년손님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
포박을 풀고 칼을 치워라” 고함을 
치더니진짜 새신랑을처다보며 혀를 찼다
"쯧쯔~어찌하여 자네는 
제것하나 지키지 못하셨는가?"
새신랑도 기가 막혔지만 엎질러진 
물이다.자신도 창피한지 얼굴을 
가리고 하인을 앞세우고 제 집으로 
도망치듯이 사라져버렸다.
새신부와 고향을 다녀온 선비는 
아예 처가댁 이웃집을 얻어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이듬해 새색시는 아들을 낳고 
사건의 장본인이던  과객신랑은 
대과에 급제하였다.
허진사는 늦게 얻은 외손주와 사위
자랑에 세월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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