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출가외인(出家外人)

갓바위 2018. 10. 21. 10:05
출가외인(出家外人)

점잖은 고진사(高進士)는 
평생(平生) 화를 내거나 다투는 
일이 없었지만 이번만은 
오장육부(五臟六腑)가 뒤집혔다. 
겨울이 되자 해소 천식(喘息)이 
심해진 고진사는 사십리(四十里) 밖 
황의원(黃醫員)을 찾아가 
약 한첩 지어 집으로 돌아가다가 
문득 딸 생각이 나서 발길을 돌렸다. 
십리(十里)만 더 가면 재작년
(再昨年)에 시집간 맏딸 집이다. 
오랜만에 딸도 보고 사돈댁(査頓宅) 
살아가는 모습도 볼 겸 
고개 넘고 물 건너 막실 맏딸 
집으로 한걸음에 내달았다. 
절구질을 하던 딸이 눈이 
왕방울만 해져서 
“아버지, 어인 일로…”
 하고 달려나왔다. 
바깥 사돈도 사랑방에서 나와 
고진사의 두손을 잡았다. 
“이렇게 불쑥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사돈(査頓)어른.” 
“별말씀을…. 
어서 사랑으로 들어가시지요.” 
사랑방에 좌정(坐定)하자 
사돈이 문을 열고 외쳤다.
“아가, 술상 좀 봐 오너라.” 
맏딸이 한참 만에 술상이라고 
들여오는데 반되짜리 호리병에 
안주(按酒)라고는 깍두기 한접시에 
말라붙은 새우젓 뿐이었다. 
민망(憫惘)해진 사돈이 문을 열고 
“아가, 닭 한마리 잡으려무나” 
하고는 술을 따랐다. 
술잔이 종지라 가양주(家釀酒)
려니 했는데 막걸리였다. 
이번엔 사돈이 직접 부엌에서 
사발 두개를 들고 와 막걸리를 
따르는데 딱 두사발에 
호리병이 바닥났다. 
고진사가 꾹 참으며 말했다.
 “술 한잔이면 됐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사돈이 사랑방에서 나갔다. 
속이 뒤틀려서일까. 고진사가 
급히 뒷간에 가서 앉았는데 •••
사돈과 맏딸이 주고 받는 
이야기가 들렸다. 
“아가, 내가 잡을게. 
그 부지깽이 다오” 하자 
맏딸년 하는 말이 …. “아버님, 
씨암탉 열두마리와 저 송아지는 
제 혼수(婚需)로 가져온 은비녀를 
팔아서 사다가 키운 겁니다. 
절대로 못 잡습니다.” 
사돈이 힘없이 말했다. “알았다.” 
고진사가 사랑방으로 돌아가 
곰방대에 불을 붙이려고 부싯돌을 
치는데 맏딸년이 들어왔다.

“아버지, 동짓달 짧은 해에 
밤길이 걱정입니다. 
가시다가 허기(虛飢)가
도시면 이거 드십시오.” 
고진사는 사돈이 팔을 잡는 것도 
사양(辭讓)하고 곧장 사돈댁을 나와 
딸년이 싸준 삶은 감자 세알을 
개울에 던져버리고 
주막(酒幕)에 들어갔다. 
막걸리 세병을 마시고 대취(大醉)해 
집에 다다랐을 땐 
삼경(三更)이 가까웠다. 
보름이 지나 동짓달도 기울어지는 
그믐날,맏딸이 부친상(父親喪) 
부고(赴告)를 받았다. 
맏딸은 부고(赴告)를 가지고 온
 머슴 억쇠를 잡고 물었다. 
“아버지가 무슨 병으로 돌아가셨소?” 
“약을 달여 드셔도 해소 천식(喘息)에 
차도(差度)가 없더니 마침내 
지난밤 사경(四更)녘에 피를 토하고 
이승을 하직하셨습니다요.” 
억쇠가 훌쩍이자 맏딸도 처마 밑에 
퍼질러 앉아 대성통곡 (大聲痛哭)을 
하더니 장옷을 걸치고 억쇠를 따라 
친정(親庭)집으로 향(向)했다.
“아이고 우리 아버지~.”
맏딸은 친정(親庭) 동네 들어서면서
부터 섧게 섧게 울어대더니 
병풍(屛風)이 둘러쳐진 
빈소(殯所) 앞에선 곡(哭) 
소리가 애간장을 녹였다. 
“아버지가 오시면 드리려고 
담아놓았던 오미자술을 
씨암탉 백숙을 안주(按酒)로 
그렇게 맛있게 드시더니 
보름 만에 이게 무슨 변고
(變故) 입니까, 아이고 아버지~.” 
맏딸의 곡(哭)이 
계속(繼續) 이어졌다. 
“그토록 주무시고 가시라고 
잡았건만 이렇게 가시다니, 
아버지~. 몰게골 논 다섯마지기를 
제게 주신다 해놓고, 
감골 밭 세마지기도 제게 
주신다 해놓고…. 가시다니요."
바로 그때였다. 쾅! 병풍(屛風)이 
넘어지더니 죽었다던 고진사
(高進士)가 고래고래 
고함치며 뛰쳐나왔다. 
“야 이년아!네가 언제 씨암탉을 
잡고 오미자술을 내놓았으며 
내가 언제 너에게 
땅을 준다고 말하였더냐.” 
“제가 거짓말한 것이나 
아부지가 거짓말하신 것이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이니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 
맏딸은 바로 뒤돌아서 
시집으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도 늙은 호박 한덩어리와 
깨 한되, 다듬이방망이 하나를 훔쳐서~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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