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종로땅 팔판동의 전설

갓바위 2018. 11. 19. 10:48
 종로땅 팔판동의 전설

조선 성종때의 일입니다
종로의 김대감은 딸만 여섯을 두고 
한숨만 쉬다가 마침내 50대나이에 
드디어 3대 독자를 얻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을 
지켜보는 게 김대감의 유일한 낙이다. 
가야금 소리가 아름다운들 
외아들 울음소리보다 더 좋으랴. 
천하의 작명가를 불러 상훈이라 
이름짓고 아들놈의 백일에는 
원근의 권문세족은 물론이고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 
3일이나 잔치를 벌였다. 
상훈이 탈없이 자라 
여섯살이 되자 서당에 보냈다.
어느 날 서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상훈이 넘어져 정강이를 다치자 
김대감은 훈장을 불러서 담판했다. 
그리고 자기 집 
사랑방으로 서당을 옮겼다. 
넓고 깨끗한 김대감댁 사랑방이 
서당이 되자 학동들도 좋아하고 
훈장님도 입이 벌어졌다.
한편 김대감댁 행랑아범은 증조부가 
참판을 했던 명문가였지만 
조부가 하녀를 범해서 부친이 
태어났기때문에, 부친은 종모법에 
의해서 노비가 되었고 행랑아범은 
어린 나이에 김대감댁에 팔려왔다.
행랑아범은 몇년 전 상처를 한 
홀아비이며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면서 마당도 쓸고 김대감의 
심부름도 하는 하인이다. 
행랑아범의 아들 석동은 김대감의 
3대 독자와 동갑내기로 
서당 청소를 도맡아 했다. 
학동들이 공부할 땐 방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 처마 밑에서 
부지깽이로 땅바닥에 
글을 쓰며 귀동냥 공부를 했다.
그런모습을 지켜보던 
김대감은 혀를 찼다"쯧쯔~!
"하는 짖을 보면 
천생이 양반의 씨앗이건만~"
"그놈의 국법이 무엇인지?""상훈이가 
저놈의 반만 닮았어도 조으련만~~"
첨언: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
자식이 태어나면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도록 하는 제도 어느 봄날,
학동들이 마당에서 돼지 오줌보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어느 학동이 찬 공이 하늘 높이 뜨더니 
마당가 장독에 빠지고 말았다. 
장독 속에 공은 떠 있는데 발가락
으로 서도 손이 닿을 듯 말i 듯하다. 
“어어어!” 공을 집어내려던 상훈이 
장독 속에 거꾸로 처박혀버렸다. 
장독 속에서 몸을 뒤집을 수 없어 
상훈은 두발만 첨벙거리며 발버둥쳤다. 
또래 학동들이 발을 잡고 
당겨봤지만 허사였다.
“사람 살려!” 열댓명의 학동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뛸 때 행랑아범의 
아들이 자기 머리통만한 돌멩이를 들고 
달려와 장독 아랫부분을 내리쳤다.

퍽 소리와 함께 간장이 콸콸 쏟아지자 
몰려온 사람들이 독 속에서 기절한 채 
처박혀 있던 상훈이를 꺼냈다. 
김대감은 새파랗게 질렸다.
혼절한 상훈이를 끌어안고 의원을 
데려오라고 고함을 지를 뿐이었다.
마침 행랑아범이 어릴 때
한강변에 살았는지라 물에 빠진 사람 
응급처치법을 알고 있었기에 
가슴을 짖누르길 반복하며
인공호흡을 해 상훈의 폐에 고인 
간장을 토하게 하자 상훈은 살아났다.
이튿날 김대감이 식구들과 
하인들을 마당에 모두불러 모았다
뒷짐을 진체 행랑아범을 처다보며
“너희 부자가 내 아들을 살렸네."
 "조상제사가 끊길 뻔 했어"
 "소원이 무엇인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대감마님을 모시고 끼니 걱정없이 
그냥 이대로 사는 게 소원입니다.”
행랑아범의 말에 김대감은
"허허~!자넨 욕심이 너무없어"
 " 그게 세상살이에 썩 좋은 
것은 아니라네~" 그리고,
행랑아범의 아들 석봉을 처다보면서
"이제부터는 네가 어떻게 커가는지 
두눈으로 지켜볼게야"
 "상훈이를 많이 가르켜주거라~"
행랑아범이 당황해서
"대감마님,!무슨 말씀이신지?~"
하지만 김대감은 대답대신 뒷짐을 
풀더니 한손에 쥐고있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집 앞에 아홉칸 기와집을 지어 
행랑아범 부자를 이사시켰다.
문전옥답 서른마지기를 떼줬으며 
30대나이의 침모와 혼례식도 
올려주었다 더구나 힘을 써서 
족보도 만들어 줬으니.
행랑아범의 아들 석봉은 김대감 
아들과 석봉이와 의형제를 맺고 
함께 서당에서 공부하게 되었으며 
20대가 되자 나란히 과거에 등극
하였으며 둘사이의 우정은 
항상 장안의 화제가 되었으며 
평생동안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서 둘다 
판서자리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들이 살았던 한양땅 종로의 
삼청동계의 팔판동에는 
조선 초기부터 권문세가들이 
많이 살고있었습니다
8명의 판서를 배출하였다고 
하여서 8판동이라고 합니다만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구요.
동네의 역사적 기록은 조선 태조때
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그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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