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사연 칠월의 태양이 뜨겁기만 했다. 대동강은 능라도를 품에 안은 채 평양성을 끼고 모란봉 아래로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김 선달은 그 대동강을 바라보며 어느 새 여름의 불볕 더위도 잊곤 했다. 『주모, 요 며칠 내가 대동강에 없는 사이에 무슨 재미있는 소식 없었소?』 김 선달은 그 동안 한양 장안을 둘러보고 온 터여서 주모에게 그런 투의 인사말을 건넸던 것이다. 이 선술집 주모는 오지랖이 넓어 소위 정보통으로 통했는데, 대동강 주변은 물론이고 평양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다. 『글쎄, 뭐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참 엊그제 한양에서 큰 장사치들이 평양을 구경하러 왔다는데요』 주모는 그다지 대단한 소식은 아니라고 생각한 듯 그저 지나가는 말투로 한 마디 툭 던졌다. 『뭐, 한양서 장사꾼들이 구경을 왔다고?』 김 선달이 눈동자를 반짝거리면서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양에서 큰 장사꾼들이 왔다면 뭔가 일거리가 만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왜 그리 놀라세요?』 『놀라긴......... 그래, 그 장사꾼들이 몇 명이나 되던가? 그리고 그 자들이 왜 이 곳에 왔다고 하던가?』 『모두 다섯 명이라고 들었는데, 무슨 일거리를 찾는 것 같았어요. 어제 우리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지껄이는 소리를 잠깐 들으니 평양 사람들은 아직 어수룩한 점이 많아 머리를 잘 쓰면 돈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요』 『뭐라고? 평양 돈을 쓸어 모은다고 했단 말이지?』 그렇지 않아도 무료하던 김 선달이었다. 한양에서 장사꾼들이 평양 구경 왔다는 소리만 듣고도 귀가 번쩍 뜨이는판인데, 어수룩한 평양 사람들의 돈을 모두 가져가겠다고 했다니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김 선달이 아니었다. 그 순간부터 비상한 머리 속에서는 모사 (謀事)의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김 선달은 서둘러 주막을 나와 대동강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는 벌써 머릿속으로 일을 꾸민 다음 물장수들이 모이는 평양성 남문 거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이고, 선달님 아니십니까』 남문 거리에 다다르자 물지게를 진 일꾼들이 김 선달을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원래 평야의 물장수들은 돈을 받고 물을 파는 장사꾼들이 아니었다. 돈 많은 평양의 양반집 사람들은 대동강 물을 길어다가 빨래 따위를 할 때 허드렛물로 사용했다. 그 물을 길어 나르는 일은 주로 양반집 하인들이 담당했는데, 그들을 가리켜 부르기 좋게 물장수라고 했던 것이다. 김 선달은 자주 대동강에 나와 보던 터라 자연히 물 지게꾼들과 친숙한 사이가 되어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였다. 또한 양반들은 하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김 선달은 그들을 친구나 동생처럼 여겨 잘 대해주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물장수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 『이보게들, 날씨도 더운데 주막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하세. 내가 부탁할 일도 있고.......』 김 선달은 지게꾼들을 불러 모아 근처의 주막으로 들어가 술판을 벌렸다. 술이 한 두잔 들어가자 금세 기분이 좋아진 물 지게꾼들이 한마디씩 했다. 『선달님! 아까 무슨 부탁할 일이 있다고 하신 것 같은 데 뭔지 말씀해 보십 시오. 선달님의 부탁이라면 죽는 일만 빼놓고는 다 들어 드리겠습니다』 물 지게꾼들의 우두머리 격인 털보가 김 선달에게 술 한 잔을 따라 올리며 말했다. 『이번 일만 잘 되면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대동강에 배를 띄워 놓고 기생 들과 어울려 신명나게 한판 놀아볼 수 있을 걸세』 『그게 정말입니까? 그 말을 들으니 무슨 일인지 더욱 궁금해 지내요. 어서말씀해주세요』 물 지게꾼들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하며 김 선달이 입을 열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닐세. 다름이 아니라 내일 아침부터 대동강 물을 길어 갈 때마다 나한테 엽전 한 푼씩을 내고 가기만 하게. 물론 나한테 낼 돈은 내가 미리 다섯 냥씩 나누어 줄 것일세. 한 사나흘만 그렇게 하면 되니 그 돈이면 충분할 걸세』 『그런 일이라면 누워서 떡 먹기가 아닙니까? 내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물 지게꾼들은 모두 다섯 냥씩 받아 가지고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김 선달은 점잖게 의관을 갖춰 입고 대동강으로 통하는 길목에 자리잡고 앉았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난생 처음 보는 그 광경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동강 물을 퍼 가면서 돈을 내다니? 별 희한한 일도 다 있군』 그러나 그 희한한 광경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진 소문이 마침내 한양 장사꾼들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여보게, 저기 좀 보게. 정말 강물을 퍼 가면서 돈을 내고 있지 않은가?』『오! 정말 그렇군. 헛소문이 아니었어』 한양 장사꾼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 선달과 물장수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 저렇게 편한 장사는 없을 걸세. 게다가 몇백 년을 퍼낸들 대동강 물이 마르겠는가? 물 한 지게에 한 푼씩이라 해도 하루에 수백 냥은 너끈히 벌어들일 것이고 말이야』 한양 장사꾼들은 저마다 여기서 물장수를 하면 자손 대대로 돈방석에 앉아서 편히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보게 칠성이, 자네는 밀린 물 값이 세 냥이나 되네. 알고는 있는가?』 김 선달은 저만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한양 장사꾼들이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아, 예. 제가 하도 바빠서 그만 돈 낼 틈도 없었습니다. 여기 한꺼번에 닷 냥을 드리겠습니다. 내일 것까지 미리 드리는 것이니 제가 퍼 나르는 지게 숫자나 잘 헤아려주십시오』 한양 장사꾼들은 그 광경을 보며 군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르르 김 선달이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 저, 선비님. 초면에 실례입니다만 지금 저쪽에서 보고 있자니 강물을 퍼 가면서 돈을 받고 있던데, 그 돈이 무슨 돈 인지요?』 그러자 다른 장사꾼이 나서서 물었다. 『그럼 저 대동강 물이 선비님의 것이란 말입니까?』 『아니, 이 사람들이 포도청에서 나왔나 아니면 암행어사 앞잡이인가. 어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불심검문부터 하려 드는가? 지금까지 물 팔아먹으면서 이렇게 경우 없는 사람들은 처음일세. 아니 내 것이니까 팔지 남의 것을 팔아먹는단 말이오?』 김 선달이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자 한양 장사꾼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서둘러 변명을 늘어놓았다. 『선비님 고정하십시오. 저 사람들이 원래 성격이 급해서 그만 실언을 한 것 같습니다. 날도 더운데 오늘은 장사를 그만 하시고 저희와 약주나 한잔 하러 가시지요. 저희가 근사하게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술을 먹자는데 마다할 김 선달이 아니기에 못이기는 척하며 그들을 따라갔다.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기는 했으나 사실은 그것은 이미 김 선달의 머릿속에서그려져 있던 그림이었다. 『그런데 몹시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선비님께서는 언제부터 대동강의 주인이 되셨는지요?』 한번 혼이 난 터라 장사꾼 하나가 정중한 말씨로 물었다. 『그것이 그렇게 궁금하오? 그렇다면 내 증조부 때부터 대동강을 지키면서 물장사를 했다는 사실만 밝히겠소. 더 자세하게 말을 하자면 내 고조부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 집 족보며 비밀까지도 모두 드러내야 할 판이오, 정녕 그대들이 남의 집 내력을 죄다 듣고 싶다는 말이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내력은 그 정도만 들어도 알만합니다. 그대신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앞으로 선비님께서 하직하신다면 저대동강을 아드님에게 물려주실 계획이신 지요?』 김 선달은 이제야 알맹이가 드러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야 당연히 아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것 아니겠소? 하지만 나는 평생 누구못지않게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 돈과 대동강을 물려 줄 아들이 없소이다. 그게 내 한이오』 그러면서 김 선달은 갑자기 침울한 표정이 되어 힘없이 술잔을 비웠다. 그런데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이 많은 장사꾼이 은근히 위로하는 척하며 말했다. 『그것 참 안된 일입니다. 손이 없으시다면 저 대동강은 이제 임자를 새로 찾아야 하는 것 아닌지요? 그래서 말씀인데, 이왕이면 저희들에게 파시는게 어떠신지요?』 장사꾼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냈다. 김 선달로서도 그 말이 언제 나오나 하고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허허, 그럼 당신들이 대동강을 사겠다는 말이오? 가격이 얼마인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저희가 천냥을 드리겠습니다』 김 선달은 그 말에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뭐요? 겨우 천냥에 저 강을 팔라는 것이오? 나는 일 없으니 이만 돌아 가겠소』 손을 휘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장사꾼들은 즉시 값을 두 배로 올려 이천 냥을 불렀다. 그래도 김 선달은 마뜩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삼천 냥. 아니 사천 냥을 드리겠습니다. 더 이상은 저희도 드릴 수가 없으니 알아서 하십시오』 이번에는 장사꾼들이 배짱을 부렸다. 그러나 그렇다고 기가 죽을 김 선달이 아니었다. 『오천 냥이라면 한번 생각해보겠소. 그래야 당신들이 계산하기도 편할 거아니오? 한 사람이 천 냥씩 공평하게 내놓으면 되니 말이오』 워낙 몸이 단 한양 장사꾼들인지라 김 선달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계약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덜컥 그 자리에서 오천 냥을 내주었다. 장사꾼들은 계약서를 받아 들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신이 나는 것은 김 선달이었다. 한양에서 온 무리들을 보기 좋게 속여 먹은 것도 기분이 좋았지만, 일거에 큰돈을 손에 쥔 것도 여간 뿌듯하지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난 한양 장사꾼들은 커다란 포대를 들고 대동강 입구로 나갔다. 돈을 긁어모으려면 큰 포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 지게꾼들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대동강 물을 긷기 위해 지게를 지고 줄지어 강가로 나갔다.한양 장사꾼들 눈에는 그들이 모두 돈으로 보였다. 잠시 후 지게꾼들이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돈을 낼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 가는 것이었다. 『여보시오. 물 값을 내지 않고 그냥 가면 어떻게 하오? 주인이 바뀐 줄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오늘부터 우리가 대동강의 임자가 되었소』 한양 장사꾼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허허, 저런 얼간이를 보았나? 물 값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야?』 물 지게꾼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러분, 이것을 좀 보시오. 내가 분명히 오천 냥을 주고 대동강을 산 사람이오』 한양 장사꾼은 계약서를 내보이며 발을 동동 굴렸다. 『저 양반이 미쳤구만. 대동강은 나라 것인데 그럼 당신이 상감마마께 저 강을 샀다는 거요?』 『그럼 저 강이 나라 것이었단 말이오?』 『별 미친 놈 다 보겠네. 그럼 강이 나라 것이지 누구 거란 말이냐?』 한양 장사꾼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이 이처럼 되고 보니 이 곳에 더 있다가는 물 지게꾼들의 조 롱거리만될 뿐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한양 장사꾼들은 허둥대며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그 후 김 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다는 소문은 눈 깜짝할 사이에 평양성 안에 퍼지더니, 급기야 온 나라에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