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사연

갓바위 2019. 2. 6. 12:40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사연

칠월의 태양이 뜨겁기만 했다.
대동강은 능라도를 품에 안은 채 
평양성을 끼고 모란봉 아래로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김 선달은 그 대동강을 바라보며 
어느 새 여름의 불볕 더위도 잊곤 했다.
『주모, 요 며칠 내가 대동강에 없는 
사이에 무슨 재미있는 소식 없었소?』
김 선달은 그 동안 한양 장안을 
둘러보고 온 터여서 주모에게 
그런 투의 인사말을 건넸던 것이다.
이 선술집 주모는 오지랖이 넓어 
소위 정보통으로 통했는데, 
대동강 주변은 물론이고 
평양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다. 
『글쎄, 뭐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참 엊그제 한양에서 큰 장사치들이 
평양을  구경하러 왔다는데요』
주모는 그다지 대단한 소식은 
아니라고 생각한 듯 그저 지나가는 
말투로 한 마디 툭 던졌다.
『뭐, 한양서 장사꾼들이 
구경을 왔다고?』
김 선달이 눈동자를 반짝거리면서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양에서 큰 장사꾼들이 왔다면 뭔가 
일거리가 만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왜 그리 놀라세요?』
『놀라긴......... 그래, 그 장사꾼들이 
몇 명이나 되던가? 그리고 그 자들이 
왜  이 곳에 왔다고 하던가?』
『모두 다섯 명이라고 들었는데, 
무슨 일거리를 찾는 것 같았어요. 
어제 우리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지껄이는 소리를 잠깐 들으니 
평양 사람들은 아직 어수룩한 점이 많아 
머리를 잘 쓰면 돈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요』
『뭐라고? 평양 돈을 
쓸어 모은다고 했단 말이지?』
그렇지 않아도 무료하던 김 선달이었다.
한양에서 장사꾼들이 평양 구경 왔다는 
소리만 듣고도 귀가 번쩍 뜨이는판인데, 
어수룩한 평양 사람들의 돈을 
모두 가져가겠다고 했다니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김 선달이 아니었다.
그 순간부터 비상한 머리 속에서는 모사
(謀事)의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김 선달은 서둘러 주막을 나와 
대동강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는 벌써 머릿속으로 일을 꾸민 다음 
물장수들이 모이는 평양성 남문 
거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이고, 선달님 아니십니까』
남문 거리에 다다르자 물지게를 진 
일꾼들이 김 선달을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원래 평야의 물장수들은 돈을 받고 
물을 파는 장사꾼들이 아니었다.

돈 많은 평양의 양반집 사람들은 
대동강 물을 길어다가 빨래 따위를 
할 때 허드렛물로 사용했다.
그 물을 길어 나르는 일은 주로 양반집 
하인들이 담당했는데, 그들을 가리켜
부르기 좋게 물장수라고 했던 것이다.
김 선달은 자주 대동강에 
나와 보던 터라 자연히 물 지게꾼들과 
친숙한 사이가 되어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였다.
또한 양반들은 하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김 선달은 그들을 친구나
동생처럼 여겨 잘 대해주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물장수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
『이보게들, 날씨도 더운데 
주막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하세. 
내가 부탁할 일도  있고.......』  
김 선달은 지게꾼들을 불러 모아 
근처의 주막으로 들어가 술판을 벌렸다.
술이 한 두잔 들어가자 금세 기분이 
좋아진 물 지게꾼들이 한마디씩 했다.
『선달님! 아까 무슨 부탁할 일이 
있다고 하신 것 같은 데 
뭔지 말씀해 보십 시오. 
선달님의 부탁이라면 죽는 일만
 빼놓고는 다 들어 드리겠습니다』
물 지게꾼들의 우두머리 격인 
털보가 김 선달에게 술 한 잔을 
따라 올리며 말했다.
『이번 일만 잘 되면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대동강에 배를 띄워 놓고 
기생  들과 어울려 신명나게 
한판 놀아볼 수 있을 걸세』
『그게 정말입니까? 
그 말을 들으니 무슨 일인지 
더욱 궁금해 지내요. 
어서말씀해주세요』 

물 지게꾼들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하며 김 선달이 입을 열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닐세. 
다름이 아니라 내일 아침부터 
대동강 물을 길어 갈 때마다 나한테 
엽전 한 푼씩을 내고 가기만 하게. 
물론 나한테 낼 돈은 내가 미리 
다섯 냥씩 나누어 줄 것일세. 
한 사나흘만 그렇게 하면 되니
그 돈이면 충분할 걸세』
『그런 일이라면 
누워서 떡 먹기가 아닙니까? 
내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물 지게꾼들은 모두 
다섯 냥씩 받아 가지고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김 선달은 점잖게 
의관을 갖춰 입고 대동강으로 
통하는 길목에 자리잡고 앉았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난생 처음 보는 그 광경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동강 물을 퍼 가면서 돈을 내다니? 
별 희한한 일도 다 있군』
그러나 그 희한한 광경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진 소문이 
마침내 한양 장사꾼들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여보게, 저기 좀 보게. 
정말 강물을 퍼 가면서 돈을 내고 
있지 않은가?』『오! 정말 
그렇군. 헛소문이 아니었어』
한양 장사꾼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 선달과 물장수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 저렇게 편한 장사는 
없을 걸세. 게다가 몇백 년을 퍼낸들 
대동강 물이 마르겠는가? 
물 한 지게에 한 푼씩이라 해도 
하루에 수백 냥은 너끈히
벌어들일 것이고 말이야』
한양 장사꾼들은 저마다 여기서 
물장수를 하면 자손 대대로 돈방석에 
앉아서 편히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보게 칠성이, 자네는 밀린 물 값이 
세 냥이나 되네. 알고는 있는가?』
김 선달은 저만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한양 장사꾼들이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아, 예. 제가 하도 바빠서 
그만 돈 낼 틈도 없었습니다. 
여기 한꺼번에
닷 냥을 드리겠습니다. 
내일 것까지 미리 드리는 것이니 
제가 퍼 나르는 지게 숫자나 
잘 헤아려주십시오』
한양 장사꾼들은 그 광경을 보며 
군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르르
 김 선달이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
저, 선비님. 초면에 실례입니다만 
지금 저쪽에서 보고 있자니 
강물을 퍼 가면서 돈을 받고 있던데,
 그 돈이 무슨 돈 인지요?』
그러자 다른 장사꾼이
 나서서 물었다.
『그럼 저 대동강 물이 
선비님의 것이란 말입니까?』

『아니, 이 사람들이 포도청에서 
나왔나 아니면 암행어사 앞잡이인가. 
어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불심검문부터 하려 드는가? 
지금까지 물 팔아먹으면서
이렇게 경우 없는 사람들은 처음일세. 
아니 내 것이니까 팔지 
남의 것을 팔아먹는단 말이오?』
김 선달이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자 
한양 장사꾼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서둘러 변명을 늘어놓았다.
『선비님 고정하십시오. 
저 사람들이 원래 성격이 급해서 
그만 실언을 한 것 같습니다. 
날도 더운데 오늘은 장사를 그만 
하시고 저희와 약주나 한잔 하러
가시지요. 저희가 근사하게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술을 먹자는데 마다할 김 선달이 
아니기에 못이기는 척하며 
그들을 따라갔다.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기는 했으나 
사실은 그것은 이미 김 선달의 
머릿속에서그려져 있던 그림이었다.
『그런데 몹시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선비님께서는 언제부터 
대동강의 주인이 되셨는지요?』
한번 혼이 난 터라 장사꾼 
하나가 정중한 말씨로 물었다.
『그것이 그렇게 궁금하오? 
그렇다면 내 증조부 때부터 
대동강을 지키면서 물장사를 
했다는 사실만 밝히겠소. 
더 자세하게 말을 하자면 내 고조부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 집 족보며 
비밀까지도 모두 드러내야 할 판이오, 
정녕 그대들이 남의 집 내력을 
죄다 듣고 싶다는 말이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내력은 그 정도만 들어도 알만합니다. 
그대신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앞으로 선비님께서 하직하신다면 
저대동강을 아드님에게 
물려주실 계획이신 지요?』
김 선달은 이제야 알맹이가 
드러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야 당연히 아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것 아니겠소? 
하지만 나는 평생 누구못지않게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 돈과 대동강을 
물려 줄 아들이 없소이다.
 그게 내 한이오』
그러면서 김 선달은 갑자기 침울한 
표정이 되어 힘없이 술잔을 비웠다.
그런데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이 많은 장사꾼이 은근히 
위로하는 척하며 말했다.
『그것 참 안된 일입니다. 
손이 없으시다면 저 대동강은 이제 
임자를 새로 찾아야 하는 것 아닌지요? 
그래서 말씀인데, 이왕이면 
저희들에게 파시는게 어떠신지요?』
장사꾼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냈다.
김 선달로서도 그 말이 언제 나오나 
하고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허허, 그럼 당신들이 
대동강을 사겠다는 말이오? 
가격이 얼마인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저희가 천냥을 드리겠습니다』
김 선달은 그 말에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뭐요? 겨우 천냥에 
저 강을 팔라는 것이오? 
나는 일 없으니 이만 돌아 가겠소』

손을 휘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장사꾼들은 
즉시 값을 두 배로 올려 
이천 냥을 불렀다.
그래도 김 선달은 마뜩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삼천 냥. 
아니 사천 냥을 드리겠습니다. 
더 이상은 저희도 드릴 수가
없으니 알아서 하십시오』
이번에는 장사꾼들이 
배짱을 부렸다.
그러나 그렇다고 기가 죽을 
김 선달이 아니었다.
『오천 냥이라면 한번 생각해보겠소. 
그래야 당신들이 계산하기도 
편할 거아니오? 한 사람이 천 냥씩 
공평하게 내놓으면 되니 말이오』
워낙 몸이 단 한양 장사꾼들인지라 
김 선달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계약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덜컥 
그 자리에서 오천 냥을 내주었다.
장사꾼들은 계약서를 받아 들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신이 나는 것은 김 선달이었다.
한양에서 온 무리들을 보기 좋게
 속여 먹은 것도 기분이 좋았지만, 
일거에 큰돈을 손에 쥔 것도 
여간 뿌듯하지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난 한양 장사꾼들은 
커다란 포대를 들고 
대동강 입구로 나갔다.
돈을 긁어모으려면 큰 포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 지게꾼들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대동강 물을 긷기 위해 지게를 지고
줄지어 강가로 나갔다.한양 장사꾼들 
눈에는 그들이 모두 돈으로 보였다.
잠시 후 지게꾼들이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돈을 낼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 가는 것이었다.
『여보시오. 물 값을 내지 않고 
그냥 가면 어떻게 하오? 
주인이 바뀐 줄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오늘부터 우리가 대동강의 임자가 되었소』
한양 장사꾼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허허, 저런 얼간이를 보았나? 
물 값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야?』
물 지게꾼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러분, 이것을 좀 보시오. 
내가 분명히 오천 냥을 주고 
대동강을 산  사람이오』
한양 장사꾼은 계약서를 
내보이며 발을 동동 굴렸다.
『저 양반이 미쳤구만.
 대동강은 나라 것인데 
그럼 당신이 상감마마께
저 강을 샀다는 거요?』

『그럼 저 강이 
나라 것이었단 말이오?』
『별 미친 놈 다 보겠네. 그럼 강이 
나라 것이지 누구 거란 말이냐?』
한양 장사꾼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이 이처럼 되고 보니 이 곳에 
더 있다가는 물 지게꾼들의 조
롱거리만될 뿐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한양 장사꾼들은 허둥대며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그 후 김 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다는 소문은 눈 깜짝할 
사이에 평양성 안에 퍼지더니, 
급기야 온 나라에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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