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전생을 찾은 윤융렬 대감

갓바위 2020. 7. 12. 08:14
전생을 찾은 윤융렬 대감 
윤회와 인과응보 이야기

개화파 지식인 윤치호(18651945)의
아버지 윤웅렬(尹雄烈 1840
1911)이
창의문 밖 경승지에 지은 별장이다.

반계 윤웅렬 별장은 도성 밖의 인왕산 북쪽
계곡에 세워진 별장으로 외국으로부터 도입된
건대건축양식이 이 주택에 적용된 사례의 집이다.
(현재 새로 개축중)

반계 윤웅렬 별장에서 본 북악산

윤웅렬(尹雄烈 1840~1911)대감은 조선시대
고종 임금 당시 대감이 된 분이다.

그 당시는 대원군과 민비 사이의 정쟁(政爭)이
한참이 일 때였고, 일본의 대륙 진출, 청나라의

국위 회복, 러시아의 남진정책 등
열강들의 침략정책에 휘말려 국내 정세의
혼란이 극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윤웅렬은 1884년 김옥균(金玉均) 등과 함께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켜 개혁을 단행할 때

형조판서가 되었으며, 청나라의 개입으로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전라도 완도로 유배되었다.

그가 완도에서 무려 3년이나 귀양살이를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잔심부름을 하는 상노(床奴)가
마을에 떠도는 소문을 듣고 와서 수다를 떨었다.

"대감마님, 저 아래 마을에 명두(明斗:마마를 앓다
죽은 어린여자아이의 귀신=태주)가 있는데,
앞일은 무엇이든 아주 절 맟춘답니다.

먼 곳 육지 사람들도 많이 찾아와서 묻고 하는데,
족집게라 하더이다. 대감마님께서도
한 번 가서 물어 보시면 어떠하시온지요?"

윤대감은 미신이려니 하면서도 앞일이
너무나 궁금하고 유배지의 생활이 갑갑하여
심심풀이 삼아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상노를 앞세우고 태주의 집에 다다른
윤대감은 자리에 앉으며 점잖게 물었다.

"점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고?"
그러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공중으로부터 어린아이 목소리만 들려왔다.
"여기 있습니다."

"그런가! 내가 대관절 누군데 이 곳에 와 있는고?"
"영감님은 서울에서 오신
귀한 어른으로 귀양을 와서 계십니다."

"그렇다면 언제쯤 풀려 나겠는가?"
"별 죄가 없으니 보름만 있으면 풀려 나시겠습니다."

"나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지금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며,
언제 만날 수 있는지를 알려 줄 수 있겠는가?"

"예, 제가 가서 보고 오겠으니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곧 '휙'하는 소리를 내며 나가더니 잠시 뒤 다시 '
휙'소리와 함께 돌아와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영감님의 자제는 미국에서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데,
역시 유학온 청나라 여인과 약혼을 하여 내년 가을

상해에서 결혼을 하게 될 것이며, 그 전에
대감님은 부자상봉을 하시겠습니다."

윤웅렬 대감의 아들은 윤치호(尹致昊 1865~1945)이다.
유명한 정치가이고 개화운동가로서,
당시 미국에서 근대교육을 배우고 있던 중이었다.

윤웅렬 대감은 태주가 자기의 신상이나
아들에 대해 알아맞히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흔히들 전생이 있다고 하는데 '
나의 전생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 물어 보자 태주는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다녀와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

"대감의 전생은 승려로서, 법호는 해파(海波)요
승명은 여순(與淳)이었습니다.

함경도 안변 석왕사(釋王寺)에서 열심히
정진하였기 때문에 그 공덕으로 중국에서

태어나 1품 대신으로 큰 공로를 세우며 부귀하였고,
그 다음인 금생에는 조선에 태어나 귀한 자리에

오르셨고 장차 군부대신이 될 것이며,
5복을 구족하여 부귀하시겠습니다.

그러나 전생에 함께 출가한 형은
스님 노릇을 아주 잘못하였습니다.

법당을 중수한다, 개금불사를 한다고
하면서 모은 시주금을 함부로 소모하였고,

부처님의 삼보정재(三寶淨財)를 도둑질한
죄로 지옥에 떨어져 고초를 받다가,

이제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았지만 가난한
과보를 받아 끔찍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강원도 통천(通川)에서 술장사를 하며
사는데, 술집 이름은 '새술막이'라 하고

이름은 이경운(李景云)이라 하며,
두 손이 모두 조막손입니다….

그 뒤 윤웅렬 대감은 태주의 예언대로 유배지에서
풀려나 가족과 아들 윤치호를 만나게 되었으므로,

자신의 전생이 석왕사 스님이었다는
태주의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광무(光武) 7년인 1903년, 아들 윤치호와
호위병들을 이끌고 안변 석왕사를 찾아갔다.

수군당(壽君堂)이라는 절의 요사채에 숙소를
정한 그 이튿날, 산중 스님들을 모두 모이게 한 다음,

"해파 여순(海波 與淳)이란
스님이 백여 년 전 이 절에 있었는가?

그 권속이 누구이며, 그 스님의
행장(行狀)을 아는 이가 있는가?"

등을 확인해 보았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과연 전생이란 없는 것인가?'

대감은 태주의 말을 믿은
자신조차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러나 태주의 말대로 2주일 있다가 유배지에서
풀려났고, 그 이듬해 가을에 아들이 상해에서

결혼식을 하여 부자가 상봉한 일, 자신이
군부대신의 자리에 오른 일 등을 생각하며,

산중의 원로이신 설하대사(雪河大師)를
찾아가 다시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역시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답답하게 여기면서 뒷산으로 사냥을 하러 갔다.
산꼭대기 바로 밑의 행적골 속으로 노루를 몰아넣고

수행원을 인솔하며 뒤쫓다가 내원암(內院庵)
입구에서 잠시 쉬게 되었는데, 바로 눈 앞에
부도(浮屠)가 일렬로 서 있는 것이었다.

윤웅렬 대감은 무심코 일어나 단장으로 풀을
헤치자 한 부도에 새긴 글씨가 눈에 띄었다.

'해파당 여순(海波堂 與淳)'
윤웅렬 대감은 정신이 번쩍 나서 아들을 불렀다.

"치호야,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이 부도에 절을 하여라."
윤치호는 아버지 명이므로 영문도 모르는 채

절부터 하게 되었고, 윤웅렬 대감은 일행을
데리고 석왕사로 돌아와 대중스님들을 모아 놓고,

완도에서 점친 전후의 일을
설명하자 대중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그리고 다시 설하대사에게 물었다.
"왜 조금 전에는 모른다고 하였습니까?"

"예, 불보살이 하는 일에
소승이 참견해서야 되겠습니까?

대감께서 직접 행하여 깨닫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완도 유배지에서

삼생사를 말해준 분은 태주가 아니라
법당에 앉아계시는 문수보살이시었습니다."

설하스님의 말씀을 듣고 윤대감이 대웅전으로
들어가 문수보살님 앞에서 절을 올리고

얼굴을 들어보니 자신에게
점을 보아줬던 바로 그 태주였다.

너무 놀랍고 기이하여 불상좌대 아래에
쓰여있는 조성내역을 적어놓은

명문을 읽어보니 거기에도 증명비구
'해파 여운' 이라 적혀 있었다.

윤대감은 보살상 앞에 엎드려 "자비하신
불보살님께서 인연중생을 버리지 않고

구제하여 주시니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며 무수히 절을 하였다.

그리고 유대방(劉大方)이라는 사람을 강원도
통천으로 보내 두 손 모두가 조막손인 '
새술막이' 주인 이경운을 데려 오도록 하였다.

4일이 지나자 유대방은 이경운을 데리고 와서
수행원에게 인계하였고, 수행원은 곧 그를

윤웅렬 대감이 거처하는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절을 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윤웅렬 대감은 절을 하지 못하게
한 뒤 전생의 관계를 들려 주었다.

"현재의 생활이 매우 어려우신 모양이니, 전생의
형님에게 돈 백냥과 옷감 열 필을 드리겠습니다.

약소한대로 논도 사고 밭도 사서 늙은 내외
편히 지낼 수 있는 생계를 마련하십시오.

그리고 아무쪼록 과거사를 뉘우쳐 부처님의
은덕을 잊지 마시고, 염불을
많이 하여 죄업을 소멸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내생에는 불법 문중에서 다시 만나
금생에 못다한 수행을 함께 하십시다."

그리고 돈과 옷감이 무거워서 가져 가기가
어려울 것을 고려하여 군수에게
환전표를 때어 주도록 배려하였다.

이경운 노인은 백배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이제 대감님의 은혜로 저의
전생 죄업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런 대은(大恩)까지 내리시니
진정 갚을 길이 없습니다.

대감님의 가르침을 잠시도 잊지않고 목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 있는 힘을 다해 받들겠습니다."

또 윤웅렬 대감은 석왕사
대중을 불러 대중공양을 올렸고,

자신이 전생에 공부하던 도량임을
생각하며 돈 오백 냥을 시주하였다.

  • 이상의 이야기는 《석옹사지》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

*참고로 윤웅렬 대감은 우리나라
제2대 윤보선 대통령의 조부이신

윤영렬씨의 형님입니다. 두 분
사이는 아주 가까운 촌수지간이지요.*

복 받는날 이루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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