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으로 돌아가는 참선, 염불,
경전탐독 기도등의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념正念[사띠, 알아차림·마음챙김]으로 행 합니다.
팔정도의 일곱번째인 정념은 두번째인 정사正思와 다릅니다.
념念과 사思는 둘 다 '생각으로 새기지만' 정사는 그야말로 ' 바르게
생각하라'는 것이고 정념은 ' 항상 정진하는 마음을 챙겨라'는 것입니다.
참선을 한다면 화두에 대한 의심이 한 덩어리가 되도록 챙겨 나가는 것이요,
염불을 한다면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가 되도록 집중을 하는 것입니다.
정념은 한덩어리로 엉키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밀가루로 풀을 쑤어 식히면
한 덩어리로 엉키듯이 정념으로 화두나 염불과 한 덩어리가 되도록 챙기라는 것입니다.
한 덩어리가 되도록 정념을 하라! 왜 정념을 하라는 것인가?
정념이 되면 주관과 객관이 없어져서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여러가지 수행법은 모두 다 주관과
객관을 초월해서 깨닫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으로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어하고
거슬리는 것을 보면 피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마음작용이 마구니로 바뀌어 공부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의 마음만이 아니라 과거에 좋아했던 것
나빴던 경험등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나타나 공부를 방해합니다.
따라서 무아의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공부인은 맞는것과 맞지 않는 것에
끌려가서는 안됩니다. 양변兩邊을 떠나야 합니다.
지금 '나'의 이기심에 맞는 좋은 것을 갖게 되고 하고 싶은 일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그것이 뒤에 가서는 고통으로 되돌아 옵니다. 마구니로 등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부를 하는 사람은 삶 속에서 비교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됩니다.
이기심으로 비교하는 삶을 살게 되면 반드시 괴로움이나 즐거움에 대한 망상을
가지게 되고 마침내 그것이 우리를 마구니의 울타리나 궤짝속에 가두어 버립니다.
마구니의 울타리나 궤짝속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그 속에서 항상 마구니가 시키는 대로 따라하게 되고 마구니의 종이 되면
자기도 괴롭고 남도 괴롭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마구니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이기심이 마구니를 만들어냅니다. 이기심 때문에
마구니의 울타리나 궤짝속에서 갑갑하고 괴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기심의 마구니가 주인자리를 차지하여 '나'를 이렇게 부리고
저렇게 부려먹으며 이렇게도 괴롭히고 저렇게도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의 욕심에 비유하면 이해가 더욱 쉬울 것입니다.
'나'에게 맞고 좋다는 이유로 욕심을 내고나면
그 욕심을 이루기 위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합니다.
욕심이라는 마구니가 주인이 되어 '나'를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들고
저렇게 행동하도록 만들면서 '나'를 괴롭힙니다.
곧 욕심은 주인이 되고 '나'는 종이되어
그 욕심이 하자는 대로 지배를 받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때 우리는 어떻게 변합니까?
매일같이 불평불만을 터뜨리고 남을 비방하면서 남에게도
상처를 주고 자기도 상처을 입으며 살아갑니다.
결국 다른 사람은 그릇되었고 자기는 옳다고 하며
살아가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마구니의 삶입니다.
이것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빠서 마구니의 종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원인은 '내가 있다(有我)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구니의 종이 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나'는 정말로 있는 것인가? 아닙니다.
여러번 이야기 하였듯이 연기에 의해 '나'라는 것이 생겨난 것입니다.
'나'의 본래 마음에는 '내가 있다'는 생각이 본래 없습니다.
있지도 않은 '나'를 있다고 착각을 하기때문에
마구니와 함께하는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연기로서 존재하는 우리는 실체가 없습니다. '나'가 없습니다.
무아입니다. 내가 본래 없는데 내가 있다고 착각을 하며 살기 때문에
마구니의 종이 되어 갖가지 괴로움을 받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이기심이 사라지면서
지혜로운 마음이 나오게 되고 그 지혜로운 마음이 '나'를 자유롭고
평화롭게 하며 남도 이롭고 나도 이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동시에 인생이 참으로 재미있어집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영화, 게임등의 놀이문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크나큰 재미가 있으며 행복감 또한 계속 이어집니다.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거나 즐거움과 괴로움이 오락가락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즐거움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고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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