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무엇을 읽을 것인가

갓바위 2023. 10. 13. 08:58

 

무엇을 읽을 것인가

앎이 바르면 행이 바르게 나온다. 하지만 스스로 안다고 외치면서도

바른 행이 나오지 않는 까닭은 참되게 알지 못하게 때문이다.

몸으로 부딪쳐 겪은 앎, 몸으로 터득해 안 앎만이 참된 앎이다.

 

앎이 바르면 저절로 바른 삶이 우러나온다, 책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할 일은 책에서 얻은 짧은 지식만으로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에서

건져 올려 머리로 헤아리고 외운 것만으로 바른 앎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몸을 놀려 몸에 익혔을때 비로소,

내가 두루 행할 수 있는 내 앎이 되기 때문이다.

일찍이 공자는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로 했다.

왜 도를 깨치고 바로 죽어도 좋다고 하지 않았을까.

 

첫째, 깨친 도를 직접 몸에 익혀야 그때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

노래할 줄 안다' '밭을 갈 줄 안다' '자전거 탈 줄 안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자전거 타는 법을 달달 외워도 자전거를 직접 타보지 않으면 탈 줄 모른다.

 

이리 쓰러지고 저리 넘어지면서 자전거와 놀아봐야

비로소 자전거와 몸이 하나가 되어 자유롭게 노닐 수 있다.

머리로만 헤아려 하는 건 온전한 앎이 아니다.

몸을 놀려 몸에 젖어들게끔 될 때 비로소 할 줄 알게 된다.

 

둘째, 깨침이 그저 내 깨침에서 멈춘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깨침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깨침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만 진정한 깨달음이

되기 때문이다. 나누지 않으면 그 깨침은 일회성으로 끝나고 말아 깨달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깨침을 나눌 때 비로소 그 깨침이 빛을 발한다.

 

그래서 공자는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법정 스님 말씀을 떠올려 보자.

"고귀한 성인 말씀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책 속에 갇혀 있으면,

그것은 한낱 그 사람이 남긴 찌꺼기에 지나지 않다는 말은 살아 있는

지혜로운 가르침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이 보편 진리 세계에까지

이르지 못하면 열배를 맺기 어렵다."

왕이 책을 읽을 때, 곁에서 끼어들어 그 글이 죽은 이 글이라면 이미 찌꺼기

일텐데, 죽은 글을 무엇 때문에 읽느냐고 시비를 건 수레바퀴를 깍는 목수얘기다

그는 네깟 좀이 무엇을 아느냐고 화를 내며 그 까닭을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죽이겠다고 말하는 서슬이 시퍼런 왕 앞에서 당당하게 대꾸한다.

"수레바퀴를 깍을 때 너무 깍으면 헐거워서 쉽게 빠져 버립니다.

또 덜 깍으면 조여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더 깍지도 덜 깍지도 않게 아주 정밀하게 손을 놀려야 합니다.

 

그래야 바퀴가 제대로 맞아 제가 바라는 대로 일이 끝납니다.

그러나 그 기술은 손으로 익혀 마음으로 짐작할 뿐 말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 성인들도 자신들이 깨달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고스란히 전하지 못한 채 죽어갔을 것입니다."

이 목수는 자기 일을 통해서 진리 세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런 깨달음이

나왔다. 우리가 제대로 진리를 이어가기 위해 책을 읽을 때,

먼저 책을 잘 살펴 마치 좋은 동무를 가려 만나듯이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문자를 따라가지 말고, 동무를 만나는

마음으로 그 속에 펄펄 살아서 움직이는 실체와 만나야 한다.

그들이 흘린 땀 냄새를 만나야 한다. 그 스승들과 함께 어우러져 땀을 흘리고

흙을 뒤집으며 씨를 뿌리고 거두어 들여야 한다. 그들과 함게 놀아야 한다.

아울러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이 진리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자신이

하는 일, 몸소 겪는 일이 지닌 가치를 반드시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한 한다.

법정스님 숨결 변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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