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의 끄트머리
좋은 일은 햇살처럼 나쁜일은 바람처럼 날아가길 희망하며
도착역 없는 거리를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이 그려진 도심 한켠에
웃음 잃은 얼굴로 병원 앞 벤치에 앉아 있는 할머니 겉으로
편의점에서 나온 여자는 다가가 앉더니 "병원에 오셨나 봐요?"
"진료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여기서 대기표를 들고 기다리고 있어요"

"네 그러시군요" "새댁은 번호표를 안 가지고 있는 걸 보니
누굴 따라온 것 같구료" "제가 아픈 게 아니라 엄마가 아파서 왔어요"
"댁처럼 착한 딸을 둔 엄마가 부럽네요 "
"어디가 안 좋아서 오신건가요?"
"늙으면 뭐 하나 좋은 곳이 없기 마련이죠"
"혼자 오셨어요 ?" "난 늘 혼자 다닌다우"
가을 물든 시간을 풀어놓은 자리에 창백한 얼굴로 온 가슴을 열어보지만
허공을 담아 마신 슬픔을 지워내기엔 부족해 보이는데요
야윈 두 어깨에 엄마라는 몫과 자식이라는 무게까지 얹어진 것 같은
여자는 할머니 손에 쥐고 있는 대기표를 보더니
"이제 곧 할머니 차례가 된 것 같으니 저랑 같이 들어가실래요?"
"그래주면 고맙죠" 두 사람이 병원으로 들어왔을때

접수실 앞 전광판에 할머니의 번호표가 마침 떠 있었고 접수를 마친
할머니와 그 여자는 얼마 후 같은 진료실로 나란히 손을 잡고 들어가고 있었다
나를 잃어가는 병... 치매에 걸린 엄마의 손을 잡고서..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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