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도솔산 도솔암
도솔암은 선운사와 함께 창건되었다고
<선운사사적기>는 전하고 있다.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선운사의
왼쪽 굴(지금의 진흥굴)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미륵삼존이
바위를 깨뜨리고 나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이에 감응받아 중애사(重愛寺), 선운사,
도솔사 등의 여러 사암을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진흥왕의 부인의 이름이 중애였으며,
딸의 이름은 도솔이었다.
진흥왕 당시에는 백제와 신라가 영토를
둘러싸고 심한 대립에 있었던 때라
<사적기>의 기록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다만 산과 암자의 이름을 도솔이라고 하고 미륵삼존이
꿈에 출현하였다는 것은 이곳이
미륵신앙과 깊이 관련돼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도솔암 마애불상이 554~598년(백제 위덕왕 재위기간)
사이에 검단 선사(黔丹禪師)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검단 선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검단 선사가 창건한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마애불상을 중심으로
여러 암자들이 들어섰다. 이후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이곳은 상도솔암(上兜率庵), 하도솔암, 북도솔암 등
세개의 이름으로 불렸다. 상도솔암은
1511년(조선 중종 6)에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하도솔암은 1658(효종 9), 북도솔암은 1703년
(숙종 29)에 각각 창건되었다. 1994년 부여문화재연구소의
도솔암 인근 지역조사에서 ‘도솔산 중사’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고려시대 기와가 출토돼 예전에는
중사라는 이름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검단 선사에 읽힌 일화 가운데 도적의 무리들을 절복시킨
이야기는 절 아랫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져 오고 있다.
선운사와 도솔암이 창건되기 전의 이 지역은 도적들의
소굴이었다. 검단 선사는 이들에게 도적질을 하지 말고
참되게 살라며 소금 굽는 법과 제지 기술을 가르쳐
생업으로 삼게 하였다. 도적이 무리들이 그 후
고마움의 표시로 소금을 시주했다고 한다.
<고창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창건설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륵신앙지였던 이곳이
언제부터 지장기도 도량이 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도솔천 내원궁에 지장보살상을 모신
고려후기부터가 아닐까 짐작 할 수 있을 뿐이다.
도솔암은 본래 상.하.동.서.남.북의 6도솔이 있었으나, 상.북 두
도솔암은 마애불만 남고 나머지 셋은 자취조차 희미해졌다.
지금 지장보살상이 모셔진 상도솔암은 도솔천 내원궁이고,
하도솔암은 마애불상이 있는 곳이며,
북도솔암은 대웅전이 있는 자리이다.
지금의 도솔암은 상.하.북. 도솔암 이 셋을 합쳐 도솔암으로
부르며, 대웅전, 나한전, 도솔천 내원궁, 용사 등의
전각과 마애불상으로 이루어졌다. 보물 제280호로 지정된
도솔암 지장보살상은 도솔천 내원궁에 모셔져 있다.
내원궁은 미륵부처님이 도솔천에서 수행과 교화를 펼치며
머무르는 곳이다. 내원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련도 붙어 있지 않은 작은 전각이다.
여느 사찰처럼 명부전이라 하지 않고 도솔천 내원궁이라
했음은 미륵신앙에 바탕을 둔 창건설화에서 연유한다고 한다.
또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시왕을 배치하지 않고
지장보살상 뒤에 목각탱화로 시왕상을 배치하고 있다.
지장보궁이라 쓰인 문을 들어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화려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으로 참배객을 맞는 지장보살님을
친견할 수 있다. 지장보살은 팔찌를 두른 오른손으로
엄지와 중지를 살짝 닿을 듯 모아 손바닥을 앞으로
내보이며, 왼손에는 둥근 보륜(寶輪)을 들었다.
내원궁 입구 왼쪽 자연암벽에는 거대한 마애불
(보물 제1200호)이 새겨져 있다.
검단 선사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위 암벽
꼭대기에 공중누각을 지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마애불 머리 위에는 기둥을 박기 위해 뚫은
직사각형의 구멍이 뚜렷하다.
마애불은 낮은 돋을새김(부조, 浮彫)으로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치켜 올라간 불거진 눈과 앞으로 내민 입술
때문에 전체적으로 거칠고 소박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수직의 바위 높이 13m, 너비 3m의 우람한 규모가
고려인의 깊은 신앙심을 짐작케 해준다.
도솔암 스님들이 조석으로 예불을 올리고 있으며,
마애불 기도를 올리는 불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마애불 가슴 주위에 구멍의 흔적이 있는데, 이 마애불의
배꼽속에 신비한 비결(秘訣)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1890년 무렵 전라감사 이서구(李書九)가 배꼽을
열어 보니 책이 한 권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자
두려워 책을 도로 넣고 봉해 버렸다고 한다.
그 뒤 동학교도들 사이에 그 책에 세상을 개혁할 비방이
적혀있다는 소문이 나돌아 한 때는 동학교도들의 집회처로
쓰이기도 했고 1892년 동학교도 손화중(孫和中)이 비결을
꺼냈다는 얘기도 전한다. 이 일로 많은 동학교도들이
옥에 갇히고 그 중 세명은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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