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상식

강진 월출산 무위사

갓바위 2014. 8. 28. 11:34
  강진 월출산 무위사 
 
전남 강진군 월출산(月出山) 무위사는 사적기에 
따르면 원래의 이름이 관음사였는데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이 지역은 백제의 
영역이었고, 더구나 617년은 원효대사가 출생한 해이므로 
사적기의 기록을 그대로 믿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가 중창하고 이름을 
갈옥사(葛屋寺)로 바꿨고, 고려 정종 원년(946)에 선각(先覺)
국사가 3창하고 모옥사(茅屋寺)로 개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각국사는 이미 917년에 입적했으므로 사실과 
거리가 있다. 조선 명종 10년(1555)에 태감(太甘)선사가 4창하고
 절 이름을 무위사로 정했다. 무위사는 10세기 이전에 창건되어
 도선국사가 머물던 시기에 사세(寺勢)를 확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임진왜란 때에도 화를 입지 않아 웅장함과 화려함이 
전라도 사찰 중에서 으뜸이었다는 무위사는 그후 점차 퇴락하여 
영조 15년(1739)에 이르면 미타전(지금의 극락보전), 
천불전, 시왕전 만이 남게 된다. 일제시대 극락전을 보수하면서 
벽면의 벽화들을 통째로 뜯어내 벽화보존각에 따로 모셨으며, 
1974년 벽화보존각과 해탈문, 분향각(焚香閣), 천불전, 
미륵전 등을 중건했다.무위사의 큰 자랑거리인 
극락보전은 1430년(조선 세종 12)에 지어졌다. 
성종 7년(1476)에 극락전 안에 아미타삼존도, 
아미타래영도를 비롯한 벽화가 그려졌다. 
이는 당시 무위사가 수륙사(水陸寺)로 
지정되었던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한다.

<전남 강진 무위사>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에서 갈 곳 잃은 고혼(孤魂)들을 
위한 수륙재를 자주 지냈을 것이고,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정토를 주관하는 부처님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위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그림은 바로 극락보전 후불벽 뒷면에 
그려진 수월관음도이다. 얼굴과 목, 어깨가 건강한 남성적인 
인상의 관음보살이 버들가지와 정병(淨甁)을 들고 노비구를 
내려다 보고 있는 모습이다. 관음보살의 광배는 두광과
 신광이 모두 보름달처럼 둥그렇고 주변에는 물결이 표현돼 
바다 위에 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벽화보존각 안에는 아미타불이 8여래와 8보살을 이끌고 죽은 
이들을 맞으러 나오는 광경을 그린 아미타래영도, 
석가여래설법도, 해수관음상좌도, 보살좌상도, 오불도,
 비천신인도 등 30여 점이 보존돼 있다. 
모두 고려 불화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 불화들로 극락보전에 
있는 아미타삼존도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그림들이다.
극락보전 오른편에 있는 선각 대사 형미(泂微)의 부도비도 
매우 아름답다. 946년에 건립된 부도비는 비신과 비신을 받친 
거북, 비신머리가 모두 온존하다. 거북의 머리는 용의 모습인데
 정수리에 뿔이 있고 귀 뒤에 작은 깃이 달려 있다. 
코가 벌름하고 윗입술은 조금 말려 올라갔으며, 
여의주를 문 입에 가지런한 이빨과 혀가 보이는 것이 특이하다.
비의 주인공 선각대사 
형미(864~917)는 광주 출신으로 속성은 최씨였다. 
15세에 가지산(迦智山) 보림사(寶林寺)에서 
출가하여 보조체징(普照體澄)의 제자가 되었다. 
28세 되던 해 사신을 따라 당나라로 건너가
운거도응(雲居道膺)의 법을 받고 905년(효공왕 5)에 귀국하였다.
 무위사에서 머물던 형미는 이후
 철원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입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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