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상식

사자후(獅子瞋)에 대하여

갓바위 2014. 12. 7. 08:12
  사자후(獅子瞋)에 대하여

사자를 백수(百獸)의 왕이라고 한다. 
뭇 짐승들의 왕답게 사자는 위용도 당당하지만
그 포효(咆哮) 또한 여느 짐승의 울음소리와는 다르다. 
그래서 이 백수의 왕이 한번 크게 포효하면 크고 작은 모든 
짐승들은 그 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져 숨을 죽인다. 
감히 맞설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자후가 실제로 사자의 울음소리를
 가리키는 말로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사람이 멋진 웅변을 하거나 크게 부르짖으며 
열변을 토할 때 흔히 그렇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또는 '질투심이 강한 아내가 남편에게 암팡스럽게 발악하며
 떠드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전에는 설명되고 있을 정도이다. 
백수의 왕 사자의 포효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꼴이다. 
이 사자 후는 본래 불교에서 고유하게 써 온 말이다. 
또 불교에서 이 말이 쓰어질 때고 
의미가 실감나게 되살아 남을 느낄 수 있다. 
열 반경에 「사자후란 결정설(決定設)을 일컫는 말」
이라 하였으며, 유미경 불국품에는 
「법을 설함에 두려움이 없으니 
마치 사자의 포효와도 같다」고 하였다. 
즉 깨달음을 남김없이 이룩하신 불타의 
설법은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고 의심할 
바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다. 
또한 그것은 어떤 사상 어떤 종교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다.
 백수의 왕이 한번 크게 소리내면 크고 작은 
짐승들이 모두 승복하듯이, 
불타의 설법은 외도(外道)들은 물론 마군(魔軍)을 
설복시키고 모든 중생을 감화시킨다. 
그래서 불타의 설법을 곧 열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열변을 토하며 자기와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세상에 수없이 많다. 
그러나 진정한 사자 후는 들려오지 않는다. 
이의 없이 수긍될 수 있는 말, 설복되어도 
기쁜 그런 사자 후는 실로 만나기 어려운 것이다. 
다만 자기의 뜻,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 위한 사나운 
언어의 폭력만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상이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말, 큰 소리가 사자 후는 아니다. 
사자의 포효는 하나의 상징일 뿐, 그것은 언어 이전 
침묵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순수한 진실의 말,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의 말씀이 곧 사자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