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연기 (十二緣起)에 대하여
오늘날 과학의 발달로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연기설이 하나씩 하나씩 확증되어 가고 있다.
연기설이란 물질의 형성과 더불어 정신(의식)
의 형성 과정에 있어서 생성과 함께 소멸,
그 후에 무엇이 되어 가는가를 말한다.
과학도 물질의 형성만 주장하다가 진화론의
대두로 이제는 유전학까지, 즉 어떠한
물질 속에 자기만이 갖는 인습적 회로까지
가지는 유전자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무엇이 되어 가는가?"-
"연기하는 것이다. 연기하며 흘러간다."
부처님이 본 것이 이것이다.
눈을 똑바로 뜨고 자기가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니까 아무 것도 남은 것은 없고 변해서
흘러가는 것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연기!'라고 말한 것이다.
그후부터 이와 같은 실체를 보아
아는 사람을 부처라 이름하게 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원인을 나 자신
[인간]에게서, 현재를 중심으로,
법칙에 의거하여 찾아 내시고,
그 결과 갈애와 무명을 발견하게 되셨던 것이며,
이 원칙에 의거하여 왜 노병사를
비롯한 괴로움이 생겨나는지를 고찰하셨다.
그 결과 그것은 태어남에 의하여
생겨난다는 결론을 얻으셨다.
그렇다면 태어남도 무엇에 의해 생겨나는가?
태어남은 '존재(욕)'에 의해서 생겨난다.
이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중간쯤에서 갈애를 만나게 되고,
마지막에는 무명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하여 무명으로부터 노병사에까지
이르는 열두 과정이 밝혀지게 되는데,
이를 십이연기(十二緣起) 라고 부른다.
여기서 연기란 '인연하여 일어남', 또는
'인연하여 사라짐(緣滅)'이라는 뜻이다.
모든 결과에는 그에 상응하는 원인이 있고,
모든 원인에도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있다.
연기란 다름 아닌 이 같은 원인-
결과의 법칙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처님은 이 연기의 법칙을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설파하셨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
따라서 이 법칙을 무명, 갈애, 노병사에
대입해 보면 다음의 식이 성립할 것이다.
무명이 있으면 갈애가 있고,
갈애가 있으면 노병사가 있다.
무명이 일어나면 갈애가 일어나고,
갈애가 일어나면 노병사가 일어난다.
무명이 없으면 갈애가 없고,
갈애가 없으면 노병사가 없다.
무명이 사라지면 갈애가 사라지고,
갈애가 사라지면 노병사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 두 형식 가운데 앞의 것은 유전연기(流轉緣起)라
부르고, 뒤의 것은 환멸연기(還滅緣起)라 부른다.
여기서 '유전'이란 흐르고 구른다는 의미로서
중생이 혼란 속에 괴로운 흐름에 휩쓸려 떠도는
삶의 과정을 가리키고, '환멸'이란 그런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서, 안락하고 평안한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유전연기는 2층으로부터 1층으로
내려가는 중생의 삶이고,1 , 2층에서부터 3층으로
향상해 가는, 환멸연기는 수행자의 삶이다.
불교는 환멸연기적인
삶을 살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이 환멸연기에 의해서 괴로움의 소멸인
멸(滅)이 일어나며, 그 멸이 해탈, 열반이다.
그렇다면 멸은 어떻게 달성될까 ?
즉 무명을 없앰으로써 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무명이 없으면 갈애가 사라진 것이요, 갈애가
사라지면 노병사가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명을 명(明)으로 바꾸는 것이
불교인의 궁극적인 목표이며,무명이 명으로
바뀐 것을 가리켜 깨달음이라 부른다.
십이연기의 열두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무 명(無明) : 진리를 모르는 '어두움(어리석음)'
(2) 행 (行) : 무명이 있으면 '결합'이 일어난다.
(3) 식 (識) : 행이 있으면 '의식'이 일어난다.
(4) 명 색(名色) : 식이 있으면 '물질[色:몸]과
비물질[名:정신]'이 일어난다.
(5) 육 입(六入) : 명색이 있으면 '여섯 감각 기관
[눈, 귀, 코, 혀, 몸, 뜻]'이 일어난다.
(6) 촉 (觸) : 육입이 있으면 대상(객관세계)과의
'접촉'이 일어난다.
(7) 수 (受) : 촉이 있으면 '느낌'이 일어난다.
(8) 애 (愛) : 수가 있으면 '갈애'가 일어난다.
(9) 취 (取) : 애가 있으면 '집착'이 일어난다.
(10) 유 (有) : 취가 있으면 '존재(욕)'가 일어난다.
(11) 생 (生) : 유가 있으면 '태어남'이 일어난다.
(12) 노사(老死) : 생이 있으면 '노병사 우비고뇌'가 일어난다.
이 가운데 '노사'가 '여덟 괴로움'
가운데 뒤의 일곱 가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덟 괴로움'의 어미 격이었던 '태어남'은
'생'으로 분류되어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십이 연기는 열 한번째인 '생'을 열 번째인 '
유'에 의거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원인의 탐구는 우리의 삶[今生]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재의 삶 이전에 삶의 원인이 있었다?
여기서 윤회(輪廻) 사상을 이야기해야 한다.
우주를 움직이는 근본 대법칙인 연기법에 의해
모든 결과는 원인으로 도출된 것이다
.
따라서 우리의 태어남 또한 어떤 원인에
의해서 도출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당연하게도 태어남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전생(前生)을
유추하지 않는 수 없다.
십이연기에서의 '유'는 바로
그 전생에 있어서의 존재[욕]이다.
이 말은 현생에서 유를 지닌 채 산 사람은 죽음
다음 지금과 같은 몸과 마음을 받아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그는 그때부터 태어남에 의거한
여러 가지 괴로움을 받게 될 것이다.
마치 지금의 우리들처럼! 그에 비해 유를 없앤
사람은 죽어서 다시 몸과 마음을 받지 않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여러 가지 괴로움을 또한 받지 않게 될 것이다.
연기설이야 말로 부처님이 깨친 정수이다.
그리고 인류사에 있어서 그 어떠한 학문이 새로이
나와 멋있게 설파해도 불교에 논리나
사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 연기설 덕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