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손규상(悔堂 孫圭祥)
(1902∼1963)
진각종(眞覺宗) 불기2446(1902)년 5월 10일
동해 울릉도 죽령(竹嶺)의 외가(外家)에서
청빈하고 어 진 선비인 아버지와 불심(佛心)이
돈독한 어머니 슬하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품성이 어질고
도량이 컸으며 근면성실하였다.
7세 때에 서당에 들어가 글을 익혔고,
15세 때에 우산보통학교에 들어가 신학문을 닦았다.
졸업 후 가풍을 따 라 2년간 의생(醫生)공부를 익혔고,
21세 때는 신학문에의 동경심을 버릴 수없어 단신(單身)
으로 대구 계성중학교에 입학하고 수학하였다.
그러나 학생 데모사건이 일어나 수학이 중단되자
거기서 일본 동경(東京)으로 갔으나,
역시 동경 대지진을 만나 귀국, 심경(心境)의
안정을 위하여 2년간 공직생활을 하였다.
25세 때 사업을 시작, 크게 이름난 사업가로 알려졌으나
장남의 죽음을 계기로 심경의 변화를 일 으키고,
그때부터 불경을 접하고 사찰을 찾게 되었다.
그때부터 새벽정진을 시작, 44세까지 약 10년간은
불법의 정진과 실천, 그리고 그 뜻의 이해에
심신(心身)을 바친 정진기간으로 볼 수 있다.
불법(佛法)의 깊은 도리에 심신을 바친지 10년째인
1946년, 10년간의 수행을 정리하고 깊은 도리의
실체험(實體驗)을 얻기 위하여 경 북 달성군에 정진도량
(精進 논奉을 설하여 100일 정진에 들어갔다.
불법의 포교방 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여야 하고, 이 불법의 진리를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적 심성(心性)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사회적 과제도 100일 정진을 행한 이유가 되지만,
그보다 더 큰 뜻은 불법의 묘리(妙理)를 체득하려
하였던 것이다. 100일 정진을 마친 1947년 5월 16일,
새로운 불법(佛法)의 도리를 체득,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이 때에 깨달은 육자진언의 묘과(妙果)는
그 후 회당이 설한 가르침에서 찾아 볼수 있다.
아집(我集 : 번뇌의 껍질)에 쌓인 자신에서 벗어나
진실한 실상 (實相)을 되찾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는 자신을 철저하게 발견하는 '참회'를
하 여야 된다는 '참회의 진리'라고 정리할 수 있다. '
참회'에 의해서 자신의 참 모습 이 드러나면 자신과
만상(萬相)의 은혜에 쌓인 존재임을 깨닫게 된는 것이다.
즉, 회당이 깨달은 증과(證果)는 '참회의 진리',
'은혜의 자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947년(진기 1) 6월 14일에 교화를 시작, '
참회원(懺悔園)'이라는 도량을 열 고, 진기 4년 참회원을
서원당(誓願堂)과 심인당(心印堂)으로
수행도량을 이원화하 였다.
진기 7년에는 종단(宗團)으로서의 면목을 갖추기
위 臼 헌법제도를 실시하 고, 인회(印會 : 總意機構)를
조직하여, 종단의 모든 일은 인회에서 결정하였다.
그 해 12월, 교명을 대한불교진각종 보살회
(大韓佛敎眞覺宗 菩薩會)라 개칭하였으며,
진기 11년에는 진각종을 밀교종단으로서의
교상(敎相)을 확립시키고, 삼밀선정법
(三密禪定法) 등을 비롯한 수행법도 확립시켰다.
종단의 내실을 기하면서 전국에 심인당(心印堂)
설립을 계속하고, 경전의 편찬·교화방편의 강구 등
한시도 쉴틈이 없이 교화에 전념하던 중,.
진기 17년 10월 11일 대중을 모아 놓고,
교계(敎戒)를 설한 후
16일 개종 17년 62세로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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