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상식

한암선사(重遠禪師)

갓바위 2015. 5. 23. 10:48
한암선사(重遠禪師) 
 (1876∼1951)
근대의 고승. 성은 온양 방(方)시. 호는 한암(漢巖). 
강원도 화천출신. 아버지 는 기순(箕淳)이며, 
어머니는 선산 길(吉)시이다. 천성이 영특하고 
총기가 빼 어났으며, 한 번 의심이 나면 
풀릴 때까지 캐묻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1897년 금강산을 유람하다가, 기암절벽의 
하나하나가 부처의 얼굴이 아니면 보살상 을 닮은 
것으로 느끼고 깊이 감격하여 입산수도를 결심하였다. 
금강산 장안 사(長安寺)의 행름선사(行 禪師)를 
모시고 수도를 시작하였는데, 
그때 진정한 나를 찾고, 부모의 은혜를 갚으며, 
극락에 가겠다는 3가지 원(願)을 세웠다. 
이어서 금강산 신계사(新溪寺)의
 보운강회(普雲講會)에서 수업하다가 
보조국 사(普照國師)의 <수심결(修心訣)>
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 뒤 도반인 함 해(涵海)와 함께 전국의 
고승을 찾아 구도(求道)의 길에 올랐다. 
1899년 가을 김천 청암사(靑巖寺) 수도암
(修道庵)에서 경허(鏡虛)를 만나 가르침을 청하였다.
경허가 <금강경> 사구게(四句偈)를 일러 주는데 
갑자기 안광(眼光)이 열 리면서 오도(悟道)하였고, 
9세 때부터 가졌던 '반고씨 이전의 
인물'에 대한 회의가 풀렸다. 
이어 대중들 앞에서 
경허로부터 도를 깨달았음을 인정받았다. 
그 뒤 오도 후의 수행인 보임(保任)의 공부를 
하였으며, 1905년 봄에 양산 통 도사의
 내원선원(內院禪院) 조실(祖室)로 추대되어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910년 봄에 
선승들을 해산시키고 평안도 맹산 우두암
(牛頭庵)으로 들어가 보임공부를 계속하였다. 
같은해 겨울 부엌에서 불을 지피다가 홀연히 
대오 (大悟)하여 마음의 자재를 얻고 오도송을 남겼다. 
그뒤부터 때와 장소를 가리 지 않고 
선풍(禪風)을 떨쳐 교화하였다. 
1925년 서울 봉은사(奉恩寺)의 조실 로 
있다가,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의 말 잘하 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강원도 오대산으로 들어 가서 
27년 동안 동구 밖을 나오지 않았다. 
한때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승려 사토
(佐藤泰舞)는 우리 불교계를 돌아본 뒤 
마지막으로 오대산 상원사를 찾 아 그와 함께 
선문답(禪問答)을 나눈 뒤 크게 감명을 받고, 
어느 강연회에서 "한암스님은 
일본 천제에서도 볼 수 없는 도인임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둘도 없는 인물"이라고 평가하였다. 
1941년 조계종이 출범되었을 때 
초대 종정(宗 正)으로 추대되어 
4년동안 조계종을 이끌었다. 
1951년 1·4후퇴직전, 인민군 들이 사찰을 
근거지로 하여 국군에게 많은 타격을 
하는 판단 아래, 오대산 안의 모든 사찰을 
소각시켰으나, 상원사만은 불에 타지 않았다. 
야밤에 대원 들을 이끌고 상원사로 와서 절을
 불태울 것을 알리는 장교에게 그는 잠깐 
기 다리도록 이르고 가사와 장삼을 갈아입은 뒤 
법당으로 들어가 좌정하고 불을 질러도 좋다고 하였다. 
장교가 나올 것을 강요하자, 
"나는 부처님의 제자다. 
부처님은 이런 경우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장군의 부하다. 
그러니 당신은 장군의 명령대로
 어서 불을 질러라."고 하였다. 
장교는 그의 인격 에 압도되어 결단을 내리고, 
부하들에게 법당의 문짝만을 떼어 불사르게 한 뒤 
돌아갔다. 1·4후퇴 때에도 오대산의 모든 승려가
 피난하였으나, 그는 남 아 상원사를 지켰다. 
저서로는 <일발록(一鉢錄)>이 있었으나 
1947년 상원사 의 화재 때 소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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