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상식

태고보우(太古普愚)

갓바위 2015. 5. 24. 09:31
성일스님  
(1301∼1382)
고려말의 고승. 성은 홍씨. 법명은 보허(普虛), 
호는 태고(太古). 홍주(洪州)출 신.
 아버지는 홍연(洪延), 어머니는 정씨이며, 
해가 품에 들어오는 태몽이 있 었다. 
13세에 출가하여 회암사(檜巖寺)
 광지(廣智)의  제자가 되었고, 
얼마 뒤 가지산(迦智山)으로 가서 수행하였다. 
19세부터 '만법귀일(萬法歸一)'의 
화두 (話頭)를 혼자서 참구하였고, 
26세에 화엄선(華嚴選)에 합격하였다. 
그뒤 불 경을 열람하면서 깊이 연구하였으나, 
불경의 연구가 수단일 뿐, 진정한 수행 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선수행(禪修行)에 몰두하였다. 
1333년(충숙왕 복위 2) 가을에는 성서 감로암
(甘露庵)에서 죽기를 결심하고 7일 동안 정진 하였다. 
그때 푸른 옷을 입은 두 아이가 나타나서 
더운 물을 권하였는데 받 아서 마셨더니 
감로수였으며, 그때 홀연히 깨친 바가 있었다. 
1337년 가을에 는 불각사(佛脚寺)에서 
<원각경(圓覺經)>을 읽다가 "모두가 다 사라져
 버리 면 그것을 부동(不動)이라고 한다."는 
구절에 이르러 모든 지해(知解)를 타파 하였다.
 그뒤 송도의 전단원( 檀園)에서 조주(趙州)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참구하였으며,
 1338년 1월 7일에 대오(大悟)하였다. 
1341년(충혜왕 복위 2)에 는 중흥사(重興寺)에서 
후학들을 지도하였고, 
중흥사 동쪽에 태고암(太古庵) 을 
창건하여 5년 동안 머물렀다. 이때 중국
 영가대사(永嘉大師)의 <증도가 (證道歌)>
를 본떠서 유명한 <태고암가> 1편을 지었다. 
1347년 7월에 호주 천호암(天湖庵)으로 가서 
석옥(石屋)을 만나 도를 인정받았고,
 40여일 동안 석옥의 곁에서 
임제선(臨濟禪)을 탐구하였다. 
그가 떠나려 하자 석옥은 <태 고암가>의 
발문을 써주는 한편 깨달음의 신표로 
가사(袈裟)를 주면서, "이 가사는 오늘의 
것이지만 법은 영축산에서 흘러나와 
지금에 이른 것이다. 지 금 그것을 그대에게 
전하노니 잘 보호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1348년에 귀국하여 중흥사에 
머물렀으며, 도를 더욱 깊이 하고자 
미원의 소 설산(小雪山)으로 들어가 4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보임(保任)하였다. 
이때 <산중자락가(山中自樂歌)>
를 짓기도 하였다. 
1363년에 신돈(辛旽)이 공민왕 의 총애를 받아
 불법을 해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므로, 
보우는 "나라가 다 스려지려면 진승(眞僧)이 
그 뜻을 얻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면 
사승(邪僧)이 때를 만납니다. 
왕께서 살피시고 그를 멀리하시면 
국가의 큰 다행이겠습니 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신돈의 횡포가
 더욱 심하여졌으므 왕사의 인 장을 반납하고
 전주 보광사(普光寺)에 가서 머물렀다. 
1368년 여름 신돈의 참 언으로 속리산에 
금고(禁錮)되었는데, 이듬해 3월 왕이 이를 
뉘우치고 다시 소설산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1371년(우왕 7) 겨울에 양산사(陽山寺)로
 옮겼 는데, 부임하던 날에 우왕은 
그를 국사로 봉하였다. 
<태고집(太古集)>에는 그의 사상과 경지를
 알게 하는 법어와 시 등이 수록되어 있어 
그의 불교에 대한 깊이와 경지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공민왕이 불러서 나라를 다스리 는 일을 
물었을 때는 거룩하고 인자한 마음이 
모든 교화의 근본이요 다스림 의 근원이니, 
빛을 돌이켜 마음을 비추어 보라고 하였고, 
때의 페단과 운수의 변화를 
살피지 않고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는 또 왕도의 누적된 폐단, 정치 의 부패, 
불교계의 타락 등에 대하여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고, 서울 을 한양으로 옮겨 
인심을 일변하고 정교(政敎)의 혁신을 
도모하기를 주장하 였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선문구산(禪門九山)을 일문(一門) 
으로 통합하여 종파의 이름을 
도존(道存)으로 할 것 등을 건의하였다.
 1382년 여름에 "돌아가자, 돌아가자." 
하고는 곧 소설산으로 돌아왔다. 
12월 17일에 언어와 동작이 ㄱe해지더니, 
23일 문인들을 불러 "내일 유시(酉時)에 
내가 떠날 것이니, 지군(知郡 : 군수)을 청하여 
인장을 봉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튿날 새벽에 목욕한 뒤 옷을 갈아입고 
유시가 되자 단정히 앉아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하니, 나이 82세, 법랍 69세였다. 
시호는 원증(圓證)이다. 그는 현 재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조(宗祖)로 받들어지고 있다. 
저서로는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2권과 
<태고유음(太古遺音)>6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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