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갚은 이야기
조선 중기의 고승 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
스님은 금강산에서 내려와 백담사에서 계시던중,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부름을 받고 서울 봉은사로
옮겨와서 정치고문 역활을 하게 돠었습니다.
당시 임금인 명종(明宗)은 13살의 어린 나이
였으므로 어머니인 문종황후가 수렴청정
(垂廉廳政)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정황후는 보우스님을
더욱 신임하게 되었고 마침내 보우스님의 말이
왕의 명령처럼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출세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보우스님을
찾았기 때문에 봉은사는 비단으로 만든 가사를 내렸고,
보우스님은 입궐할 때마다 그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궁궐에는 백의(白衣)나 보통옷을 입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도(道)가 높은 보우스님이라도 궁궐 출입을
할 때에는 비단 가사장삼과 연화관에
사인교(四人轎)를 타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금강산에서 보우스님을
키워주신 노스님이 내려오셨습니다.
" 우리 보우가 어떻게 사는가,
중노릇을 옳게 하고 있는지 한번 보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수천리를 길을 걸어 봉은사에
이르렀는데, 마침 그날이 보우스님이
입궐하는 날이라 입궐행렬을 보게된 것입니다.
보우스님은 연화관에 비단 가사장삼을 입고
턱하니 가마에 앉아 있고 가마꾼들은 "휘,물럿거라,
보우 대사님 행차시다." 하면서
요란하게 출행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누더기옷에 송낙(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든모자)을
쓰고 지팡이 하나 짚고 거지 행색을 한 노스님은
뒷전으로 밀려 제자 보우를 만나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물론 보우스님이 알았으면 당장 가마에서
쫓아내려왔겠지만, 주위 사람들이 아예 만날 수
조차 없도록 막고 있었으니 도리가 없었습니다.
노스님은 발길을 돌리며 혼자 말했습니다.
"구피마피(拘披馬披)로다!"
개가 말껍데기를 썼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노스님의 말씀대로 후일 보우스님이
정말로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권세를 누리던 보우스님은 문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반대파들로부터 축출을당해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귀양지 감옥에서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제주도에 어승마(御乘馬)가
한 마리 태어났는데 보통 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뛰어난 준마(駿馬)였습니다.
제주도에는 주로 조랑말이 많이 났는데,
이 말은 조랑말의 몇 배나 되는 크기에다
골격이 빼어나고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호마(胡馬)같은 말이었습니다. 제주 목사는
그 말을 어승마로 임금님께 진상했습니다.
임금은 매우 기뻐하여 말에게 '호남장부
'(好男丈夫)'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온갖 치장을 다하여 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어찌나 영리한지 임금이 어디를
가야겠다고 생각만 하면 그 앞에 척 나타나곤
하였으므로,간신들이 근처에 오면 발길로
차거나 물려고 하였습니다.
충신인지 간신인지는 말 근처에 가보면
저절로 밝혀지므로, 뒤가 켕기는자들은
이 말 곁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불교중흥을 위해 보우스님은 많은 힘을 기울였지만,
권력의중심에 서서 많은 사람들의 원망을 쌓았기에
결국은 제주도 귀양을 가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고,
임금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말이 되어 돌아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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