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일종식 하신 청화 큰스님
승가에는 숨은 도인이 참으로 많지요.
아니 도인이라는 말을 붙이기 전에 독한
분들, 아니지요 무지막한 분들이 참 많지요.
왜 이렇게 말하느냐하면 너무나 하기 힘든
행을 몸소 보여주시기 때문인데,
정말 눈물 나게 고맙고 존경스럽습니다.
50여 년간 하루에 한 끼만 드시는 일종식을
하신 청화스님은 79세에도 매주 법문을 하셨지요.
뿐만 아니라 묵언과 일종식 및 장좌불와를 함께
하셨는데, 60세가 넘어서야 토굴생활을 접으셨지요.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어른들,
더욱 소중히 해야 할 인류의 자산입니다.
1923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큰스님께서는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대화상님을 은사로 출가하셨다.
출가이후 은사 금타대화상님의 가르침을 좇아
50여년간 대흥사 진불암, 상원암, 남미륵,
월출산 상견성암, 백장암, 벽송사, 백운산
사성암, 혜운사등의 토굴에서 묵언과 일종식 및
장좌불와를 원칙으로 수행에 전념하셨다.
60세가 넘어서야 토굴생활을 마치시고
큰스님께서는 1985~95년 곡성 태안사에서
주석하시면서 대중들과 함께 삼년결사
용맹정진을 감행하시고, 당시 폐찰이
되어가던 태안사를 중창하셨다.
한국불교 역사상 최초로 92년 겨울,
미국 캘리포니아 하이랜드 스프링에서 10여분의
대중스님과 함께 동안거 결제를 나셨다.
미국에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하기위하여
93년 동안거를 시작으로 미국 최초의
한국사찰인 캘리포니아 카멜에
소재한 삼보사에 주석하셨다.
95년 1월 동안거 중에 7일간 사부대중을
위한 '순선안심탁마법회(純禪安心啄磨法會)
'를 열어, 참다운 선수행의
올바른 도리를 설파하셨다.
95년 5월부터 팜스프링에서 대중들과 삼년결사를
마치시고 수행도량 금강선원을 개원하셨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이셨고, 성륜사,
태안사 등에서 조실로 계셨으며,
매달 전남 곡성 성륜사와 서울 도봉산 광륜사에서
정기법회를 여시어 "법집을 여윈 원융무애한
불법수행과 먼저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깨닫고
본체를 여의지 않고 수행하는 염불선"을
주창하시다가 2003년 11월 12일 열반하셨다.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