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억쇠와 최첨지

갓바위 2018. 7. 10. 15:42
억쇠와 최첨지

억쇠는 작년에 최첨지네 집 
머슴살이를 하며 뼈 빠지게 일하고 
나락 열섬을 받기로 한 
새경을 반밖에 못 받았다.
나머지 다섯섬은 다음해 추석에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열달을 
기다렸다가 마침내 추석이 
3일 지나서 최첨지를 찾아갔다. 
안동소주 한병을 사 들고 찾아간 
억쇠에게 최첨지는 새경은 전부 
다섯섬이고 작년에 다섯섬을 
모두 주었으니 더 줄 게 없다고 
딱 잡아떼며 안동소주 호리병을 
내던져 박살을 내버렸다.
눈물을 흩뿌리며 최첨지 집을 나서는 
억쇠를 늙은 행랑아범이 데리고 
주막으로 갔다. 
주막에서도 억쇠는 섧게섧게 울며 
“그걸 받아 여동생 시집보내야 하는데"
행랑아범도 목이 메어 “이 사람아. 
우선 막걸리 한잔하게.” 
그때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낯선 
털보가 “거… 내 일은 아니오만 듣자 
하니 최첨진지 개첨진지 악인이구먼.” 
팔을 걷어붙이며 흥분했다. 
주막에 탁발을 왔던 스님도 
흐느끼는 억쇠 등을 두드렸다.
이튿날 이른 아침, 
행랑아범이 최첨지를 깨웠다. 
“나으리 빨리 나와 보십시오. 
큰일 났습니다.” 
행랑아범을 따라 외양간에 간 
최첨지는 깜짝 놀랐다. 
소는 없어지고 웬 털북숭이 
남정네가 벌거벗은 채 소고삐에 
매여 자고 있는 것이다.
외양간에서 자고 있던 털보는 
소란에 깨어나 눈을 크게 뜨고 
자기 얼굴을 만지고 몸을 내려다
보더니 환호성을 터뜨리며 
“와- 마침내 내 모습으로 돌아왔네.”
기쁜 것도 잠깐, 엎드려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고개를 쳐든 털보는 울먹이며 
“어느 날 자고 나니 소가 되었지 뭡니까!” 
그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똑똑똑…” 지나가던 스님이 들어와 
“그대를 소로 만든 건 부처님이야. 
소가 되기 전에 그대의 악업을 아는가?”
털보는 울면서 
“온갖 나쁜 짓은 다 했지요. 
장리쌀 놓아서 남의 논밭 빼앗고, 
머슴 새경 떼먹고, 동냥 온 거지들 
때려서 내쫓고, 수절과부 겁탈하고…” 
최첨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스님 왈, “그대의 늙은 모친이 
지극정성으로 불공을 드려 
7년 만에 풀어준 걸세. 
나무아미타불.”
최첨지는 행랑아범에게 다가가 
“억쇠는 어디 있어?” 
“울면서 돌아갔습니다.”
소사람 털보는 옷을 입혀 돌려보내고 
스님도 떠나자 최첨지는 행랑아범을 
불러 나락 다섯섬보다 훨씬 많은 
돈 보따리를 맡기며 
억쇠에게 갖다 주라 일렀다.
고갯마루에서 기다리는 억쇠와 
스님과 털보에게 달려간 행랑아범은 
“억쇠야 이거 받고, 
저 소도 네가 몰고 가야 한다.” 
“나는 웃음 참느라 혼났네.” 
털보의 말에 모두 웃어도 
억쇠는 그저 눈물만 떨궜다.
최첨지는 장리쌀로 빼앗았던 땅을 
모두 돌려주고 곳간을 열어 
땟거리 없는 집에 쌀자루를 보내며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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