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낙방거사

갓바위 2018. 7. 20. 18:19
낙방거사

조초시는 털썩 주저앉았다. 
하늘은 노랗고 땅은 꺼질 것만 같다.
누구는 칠전팔기라던데 
조초시는 여덟번째 과거시험에 
또 낙방한 것이다.
터벅터벅 주막집으로 가 
술 한잔을 마시고 나자 허구한 날 
남편 급제를 위해 새벽마다 
정화수 떠놓고 신령님께 기도하고, 
친정에 가서 갖은 구박 받으며 
보리쌀자루 얻어 오고, 
꾸벅꾸벅 졸면서 삯바느질하던 
부인 얼굴이 어른거려 
그만 꺼칠한 뺨으로 두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고향땅으로 내려가는 걸음이 
가시밭길 맨발로 걷기보다 더 힘들다. 
나무를 보면 목을 매고 싶고 
물을 보면 뛰어들고 싶지만 
어린 두아들과 부인 생각에 
터벅터벅 발걸음을 계속했다.
책을 몽땅 아궁이에 넣어 태워버리고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리라.”
밤이면 주막에서 자고 
날이 새면 걷기를 계속, 
장이 선 어느 장터를 지나다 
좌판 술장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술을 잔뜩 마시고 길을 가다가 술이 
취해 길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만인가, 잠을 깬 조초시가 
겨우 상반신을 일으켜 앉아보니 
햇살은 쨍쨍한데 발아래 
가마솥만한 웅덩이는 하루하루 
말라 들어가 물이라고는 
한됫박도 안되는데 
올챙이들이 바글바글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저것들도 생명이라고 저렇게 
살려는데…” 조초시는 탕건을 벗어 
그물처럼 올챙이들을 잡아 
열걸음 밖의 냇물에 풀어줬다.
이튿날 어느 고을을 지나는데 
“여보시오, 나그네, 잠깐 쉬었다 
가시오” 뒤돌아보니 길가에 
가마니를 깔고 앉은 관상쟁이였다. 
“나 돈 한 푼 없는 신세요.” “
복채는 안 받을 테니 이리 앉으시오
.” 다리도 아프던 차에 조초시는
 관상쟁이 앞에 앉았다.
“보름 전에 이 길로 올라가던 
당신의 얼굴을 봤소. 인중 끝이 
죽어서 아까운 상이라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상이 살아났소, 귀상이요.”
조초시는 기가 막혀 큰소리로 “
여덟번이나 낙방해 낙향하는 놈이 
어떻게 귀상이겠소” 버럭 화를 
냈더니 “그 사이에 상이 변했소이다. 
크게 적선을 한 적이 있소이까 아니면 
남의 목숨을 살려준 일이라도?” 
“과거 보고 떨어져 내려오는 놈이 무슨 
적선이고 남의 목숨 살릴 일이 있겠소!”
조초시가 벌떡 일어나 가던 길을 
가는데 뒤에서 “내년에 한번만 
더 보시오” 하는 관상쟁이의 
외침을 한귀로 흘려버렸다.
조초시는 길을 가다가 냇물을 보고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다음해, 조초시는
 장원급제를 했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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