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구경하다.
송나라 장안에 살던 최이계는 도독을 지냈으며
그의 아우 최융은 상서(尙書)를 지낸 사람이다.
개보(開寶) 2년(서기 969년)에 형 이계는
가벼운 병으로 며칠을 누웠더니 홀연히
죽었다가 이틀만에 다시 살아났다. 이하는
이계가 죽어서 당한 일을 이야기한 내용이다.
이계가 누워 있는데 사령인 듯한 두 사람이 와서
양쪽 팔을 붙들고 "어서 가자" 하며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어디론지 마냥 재촉하며 데리고 갔는데
얼마를 갔었던지 어떤 큰 성문 앞에 이르렀다.
그 안에는 덩그런 기와집들이
여 남은 채가 넘어 보였다.
집 앞에 당도하니 그 안에는 검은 관을 쓴 관리가
보였고 그 앞에는 부군(府君)이라 하는
여러 관인들이 있었으며 그 밖에
사령인듯 한 사람들이 퍽 많았다.
사자는 이계를 끌어다 어떤 부군 앞에 세웠다.
부군이 묻기를, "너는 불법을 닦아왔는가?
착한 행을 하였는가? 스님들께 공양 올렸던가?" 하며
한참 있더니 "보아하니 당신은 이미 큰 성인을 받들어
모신 적이 있으니 세상에 있으면서 큰 복을 지었소" 하였다.
그리고 옆에 있는 부군이 묻기를
"이 사람의 수명이 어찌 되었습니까?" 하니
그 부군이 한 권의 책을 몇장 넘기더니 이계를
보고 하는 말이 "경의 수명은 다하지 않았습니다.
지장보살님의 구호를 받은 것이요." 하고는
이번에는 사령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어찌하여 얼마 안되는 사람의
수명을 경솔하게 다루느냐"하고 꾸짖었다.
앞서의 부군이 또 물었다. "그대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소?" "돌아가고 싶습니다."
"여기에 왔으니 지옥을 한번 보고
가지 않겠소?" "보고 싶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군은 말 한필과
사자 두 사람을 시켜 함께 가게 하였다.
거기서 동북방으로 5, 6리 가량 가니 쇠로 만든
큰 성에 당도하였다. 거기가 지옥이었다.
한 쪽 귀퉁이에서 그 끝까지는 수십리나 되었고
그 안에 쇠로 만들어진 구역이 있어서
쇠 끓는 물과 불꽃이 그 안에 꽉 차 있었다.
들어가면서 보니 어떤 집의 대문이 쇠로 되어
있는데 문 사이로 그 안을 잠깐 엿볼 수 있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 안에는 돌아가신 이계의
조부모들이 있었고 목에 칼을 차고 손에 수갑을 차고
몸은 쇠줄에 묶여서 맹렬한 불에 그을리고 있었다.
이계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 죽은 조상들은
그 고통 속에서도 이계를 알아보고 "나를 구해달라."
고 울부짖으며 소리 소리쳤다.
이계는 정신을 바짝 차려서
"지장보살을 꼭 생각하십시오." 하고
소리치는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앞으로 더 나아가서 한 성에 이르니
그 안에는 쇠 평상이 놓여 있었고 생전에 알던
사람이 몸이 검은 숯과 같이 되어
맹렬한 불길 속에서 고초를 받고 있었다.
그에게도 합장하면서 "일심으로
지장보살을 생각하십시오." 하고 일러주었다.
그 다음에 적사(赤砂)지옥이라는 곳에 이르니
칼로 된 나무와 벌겋게 달은 구리쇠 기둥이
몇 천개나 들어 있는데 죄인들이
그 위에서 고초를 받고 있었다.
황사(黃砂) . 백사(白砂) . 초사(焦砂) 등 일곱 지옥을
돌아보면서 지장보살을 생각하라고 소리치며 돌아나왔다.
함께 가던 사자가 하는 말이 "불법을 불신하고
비방하는 자는 이 곳에 떨어지게 됩니다."
하고 일러 주었다.
지옥에서 나와 다시 말을 타고 어디론가 한참을
가서 한 성안에 이르니 거기는 환경이 앞서와는 딴판이었다.
어디서인지 쨍그랑 쨍그랑 옥방울을 굴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풍악소리가 은은히 들려왔고 이름 모를
아름다운 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성 한가운데에 이르니 대보전(大寶殿)이라
하는 큰 궁전이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가 보니 궁전이라기 보다
오히려 한 큰 세계가 벌어져 있었다.
수많은 남녀들이 즐겁고 한가롭게 아름다운
경치며 즐거운 악기며 기이한 꽃이며 새들을 즐기고,
혹은 담소하고 혹은 음식을 나누고 있었다.
이계는 이 곳이 극락이라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을 돌아다니다 보니 그의 조부모도 계셨으며
그 밖에 돌아가신 육친들도 많이 보였다.
이계는 기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였다.
그의 조부모와 조상들이 지옥고를 받는 것을
좀 전에 보았는데 어느 새 여기 와서 이런
복락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의심이 들었다.
거기에 있던 남녀들이 모두가
이계를 알아보며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지옥에 있을 때에 당신이 지장보살을
생각하라고 가르쳐 주셨으므로 그 덕분에
지장보살 염불을 하여 우리가 여기 오게
되었으니 참 고맙소." 하는 것이었다.
이계가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다들 대답하기를
"여기는 보사(寶舍)라 하는데, 말하자면 복받는 집입니다.
이 곳에 나면 수명도 길고 고통도 아주 없습니다.
여기서 즐겁게 살다가 장차 미륵불께서
출현하시어 삼회설법을 하실 때에
그 법문을 듣고 모두 보리도를 성취하게 됩니다. "
이계가 묻기를 "미륵 부처님은 어떻게 해서 만나게 됩니까?"
하니 이번에는 함께 갔던 사자가 일러주었다.
"옛날에 부처님께서 지장보살에게
업도중생을 제도하도록 부촉하셨습니다.
그 때에 지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쭙기를 '부처님의
사부대중이 결코 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미륵불께서 출현하시기 전 56억 7천 만 년 사이에
중생이 있어서 정토세계에 태어나거나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원하더라도 그 복이 미흡한 자는
복사에 나와서 복을 누리면서 부처님 출세하실 때까지
그 곳에서 기다리게 하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기 때문에 이 복사가 있습니다.
이계는 지옥과 복사를 두루 돌아보고
앞서의 부군 앞에 다시 돌아갔더니
부군은 이계를 인간계에 내보냈던 것이다.


복 받는날 이루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