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죽고 사는 것은 인연 따라 오는 일

갓바위 2021. 3. 28. 09:44

 

부부가 슬하에 자식이 없이 영마루에 주막집을 차리고 근근히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논밭을 사고 큰 기와집도 사고 마을에서 이름난 부자가 되었다.

 

또 얼마 안 되어 없던 자식을 낳아 슬하에 세 아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늦게 자식을 얻어 금이야 옥이야 하며 키운 세 아들을 서당에 보내어 글공부도 시켰다.

 

모두 글을 잘 깨치고 문장이 좋아서 과거를 보러 보냈는데 셋이 한꺼번에 급제를 하였다.

그러자 두 내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과거에 급제한 세 아들이 돌아오는 날,

내외는 잔치를 벌이고 풍악을 울리면서 세 아들을 기다렸다.

 

세 아들이 말을 타고 풍악을 울리며 잔치 마당에 막 들어서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들 셋이 영문도 모르게 말에서 떨어져 그만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그래서 잔치 마당이 온통 통곡의 초상집으로 변했다.

 

갑작스레 세 아들의 장사를 치른 내외는 너무도 억울하고 분하여 그 고을 원님을 찾아갔다.

"원님, 이 원수를 좀 갚아 주십시오. 과거에 급제한 우리 세 아들의

새파란 목숨을 빼앗아 간 그 못된 잡귀나 귀신이 있다면 처벌해 주십시오."

 

원님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내외를 내려다보았다.

"자네들, 아들 셋을 한꺼번에 잃더니 실성을 한 것이 아닌가.

나는 이 고을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사람이지 염라대왕까지 다스리지는 못한다네."

 

그래서 내외가 힘없이 원님 앞에서 물러나왔다.

울고불고 하다가 실성한 듯 돌아가는 내외를 바라보던 원님은 참으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귀신을 한 번 불러 물어보기라도 해야겠다 싶어 이방을 불러들였다.

 

"너 오늘 쌀을 일곱 번 쓸고 일곱 번 씻어서 밥을 지어 밥상 셋을 방죽 옆에 있는 다리에 차려 놓아라."

하고는 글을 써서 이번에는 담이 큰 사령에게 주면서 말했다.

 

"오늘 밤 자정에 방죽 옆에 있는 다리에 나가면

밥상을 받고 있는 늙은이가 있을테니 이 글을 보여 드려라."

 

원님이 말한 대로 정성스레 밥을 지어 방죽 다리 옆에다 갖다 놓은 다음,

자정이 되어 사령이 편지를 가지고 다리께로 갔다.

 

거기에는 과연 늙은이 셋이 밥상 앞에 앉아 있었다.

사령은 늙은이들에게 원님이 써 준 글을 보여주었다. 세 늙은이는 글을 읽고 나더니,

 

"시장하던 차에 대접도 잘 받았고, 남의 동네에 왔으니 이 고을의 원님이나 만나보고 가야겠군."

하고 일어서서 사령의 뒤를 따라 원님에게로 왔다.

 

원님은 한밤중에 저승의 염라사자들을 방안으로 모셨다. 원님은 다짜고짜로 물었다.

"아무리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염라대왕이지만 이제 막 과거에 급제한 새파란 목숨 셋을

그것도 한꺼번에 앗아가다니 사람의 목숨을 너무 함부로 다루는 것이 아닙니까?"

 

"허허 원님! 우리가 함부로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것 같아도

제 명이 다하지 않은 사람을 데려갈 수는 없는 것이외다."

"그렇다면 주막집 내외의 세 아들도 셋이 똑같이 명이 다 되었다는 말씀입니까?"

 

"아무렴요!" "아니 어떻게 새파란 젊은이 셋이 하나같이 명이 다 되었다는 말씀입니까?

원 세상에 고르지 못한 일도 다 있소이다."

 

"허허 원님, 사실 주막집 내외의 죽은 세 아들은 주막집 내외에게 원수를 갚으러 온 사람들이외다.

자, 들어보십시오. 20여 전의 일입니다. 유기장수 셋이 그 내외의 주막에 든 적이 있었지요.

 

그때 내외는 한밤중에 그들을 죽여 돈을 빼앗고 시체를 마구간에다 묻었습니다.

그래서 원통하게 죽은 세 유기장수가 원수를 갚기 위해 주막집 내외의 아들로 태어났던 것입니다.

 

귀여운 자식으로 자라 과거까지 합격하여 온갖 기쁨을 주다가

갑자기 죽음으로써 내외의 가슴에 슬픔의 칼을 꽂은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원님, 그들이 어찌 예사의 자식이겠소?

죽고 사는 것은 다 인연따라 오가는 일들이 아니겠소."

 

이 말을 마치자 세 늙은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날이 밝기가 바쁘게 원님은

사령들을 보내어 영마루 주막집의 마구간 밑을 파헤쳐 보도록 했다.

 

과연 사자들이 말한 대로 마구간 밑에는 세 사람의 시체가 썩지도 않고 있었다.

원님은 주막집 내외를 잡아들였다.

그리고 여죄를 묻고 벌을 내리면서 그 사실을 설명했다.

하늘은 짓지 않은 복을 내리지 않고, 사람은 짓지 않은 죄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남에게 은의恩義로 준 곳은 은의로 받고, 악의惡義로 빼앗은 것은 악의로 빼앗기되

 

상대방의 능력에 따라 지은 업보의 강도에 따라 받는 것이

몇 만 배 더할 수도 있고 몇 만 분의 일로 줄어들 수는 있으나 아주 없앨 수는 없다.

 

혹 상대가 직접 죄복을 주지않으면 자연이 주는 죄복이 돌아온다.

이 세상에는 남이 지은 죄복을 대신 받아올 수도 없고,

자기가 지은 죄복을 남에게 넘겨 줄 수도 없다.

인연산책 중에서

'卍 ~ 어둠속 등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련선사와 호랑이  (0) 2021.04.02
효자 본생  (0) 2021.03.29
정진스님의 예언과 무너미 고개  (0) 2021.03.27
금빛 까마귀  (0) 2021.03.24
나옹스님의 천도기도  (0) 2021.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