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사다리에서 떨어져 시집을

갓바위 2022. 7. 28. 09:20

설화=사다리에서 떨어져 시집을 가다


양주(楊洲)땅에 최씨의 세 딸이 살았다.
그들은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오라비인 최생에게 의지하고 있었는 데,

최생은 재물에 인색하여 그 누이동생들을 시집보냄을 주저하는 사이에

맏이는 25세, 둘째는 22세, 막내는 19세로 꽃다운 나이에

허송세월하고 있는 것에 대해 스스로 슬퍼하고 있었다.

 

마침 봄날을 만나 세 처녀는 집 뒤의 동산에 올라 놀았는 데, 맏이가 두 아우에게 말하였다.
동산(東山)이 적막한데 아무도 없으니 우리 태수(太守) 놀이나 하고 놀까 ?"

마침내 맏이는 태수라고 자칭하고 근처에 있는 부서진 사닥다리 위에 걸터앉더니,
둘째는 형리(刑吏)로 명하고, 막내는 그녀들의 오라비인 최생으로 삼았다.

맏이는 막내의 머리를 끌어 앞에 꿇어앉히더니 죄과를 낱낱이 들추어내며 말했다.
"너의 세 누이동생들은 이미 부모를 여의고 너를 아버지처럼 믿고 있는데,

혼례를 치를 나이가 지났어도 시집을 보내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고?

가산도 제법 넉넉하고 전답도 넓은데다, 하물며 너의 누이들은

재색을 겸비하여 이웃과 마을에서 칭송 받지 않는고?

 

막내의 나이 19세이니 맏이와 둘째는 알 만 하다.

어찌 이처럼 잔인하게 세 누이로 하여금 빈 규방에서 헛되이 늙어가게
한단 말이냐? 너의 죄는 태형을 받아 마땅 하도다.

속히 잡아 매를 쳐라." 최생 역을 맡은 막내가 재삼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난리를 겪은 후 가산이 탕진되어 혼수를 갖추기 어려운지라

선비집안을 택하고자 하여도 한 집도 허혼(許婚)하지 않사옵니다.

소생이 혼사를 시키지 않으려 한 것이 아니옵니다."
태수 역을 맡은 맏이가 말하였다.

"너의 말은 거짓이다. 난리를 겪은 후 가산이 탕진되었다고 핑계댄다면

난리를 겪은 자는 모두 혼사를 폐한단 말이냐?

 

혼사가 이루어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핑계 댄다면

딸을 둔 자는 모두 헛되이 늙도록 하여야 한단 말인고?

 

너의 집이 망했다면 혼수는 집안 사정에 맞도록 갖출 것이며,
또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저 건너 마을

김생의 아들이 배필감으로 적합하지 않은고?"


이때 관아의 매(鷹)를 관리하는 통인(通人)이
매를 쫓으며 동산의 세 처녀들 근처에 이르렀다가
처녀들이 하는 연극을 보고는 그만 소리를 내어 웃고 말았다.

세 처녀는 크게 놀라 달아나려다가 맏이가
그만 사다리에서 떨어지면서 발을 삐고 말았다.

통인이 관아로 돌아가다가 길에서 한 나그네를 만나니 나그네가 물었다.
"이 고을 관아의 관인이시오 ?" "그렇습니다."

"내 태수님의 집안 조카벌 친척으로서 이 고을을 찾아왔는 데 계시는가요?"
"계시기는 계시는 데, 오늘 발을 헛딛어 낙상을 하신지라 관아에서 조리중이십니다."

나그네가 관아에 들어가니 태수가 바야흐로 관아에 앉아 있는지라 나그네는 물었다.
"어르신께서 낙상하셨다고 들었는 데 무리하게 정사를 돌보고 계시는군요."

"낙상한 일이라곤 전혀 없었는 데 어디에서 그 말을 들었는가 ?"
"길에서 관아의 통인을 만나 안부를 물으니 그리 대답하던데요."

태수는 기이하게 여기고 통인을 불러들여 물으니

통인은 세 처녀의 일에 관해 모두 아뢰며 말했다.

"태수라고 자칭한 맏이가 사다리에 걸터앉아 있다가
소인의 웃음소리에 놀라 낙상한지라 나그네를 만나 그렇게 말했습니다.

 

농으로 대답한 것일 뿐이옵니다."
태수는 객과 더불어 박장대소하더니,

즉시 최생을 잡아오게 하여 문초하였다.

"너는 세 누이동생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혼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집보내지 아니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는 마침내 매질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최생이 태수에게 아뢰는 바가 통인에게서 전해들은
막내가 한 말과 한결 같은지라 태수는 또한
맏이가 한 말을 차례대로 말하며 꾸짖었다.

그리고는 꾸짖는 말끝에, "저 건너 마을 사는 김생의

아들이 맏이의 배필로 적합하지 않은고?"

하니 최생은 이윽고 태수의 말에 따르기로 하여
그날로 김생을 불러 택일을 하고 혼수를 보내게
하여 맏이의 혼례를 치루게 하니

맏이는 과년한 나이 25세에 이르러 비로소

남녀상함(男女相合)의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맛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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