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탁[五濁] : 말세(末世)에 일어나는 다섯 가지 탁한 것.
(1) 겁탁(劫濁): 재앙과 재난이 많음.
(2) 번뇌탁(煩惱濁): 번뇌가 들끓음.
(3) 중생탁(衆生濁): 악한 중생이 많음.
(4) 견탁(見濁): 그릇된 견해가 만연.
(5) 명탁(命濁): 인간의 수명이 단축됨.
중생들이 오탁의 탁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게 곧 일체 불행-고해(苦海)-를 만든다.
부처님이 지혜의 광명을 아무리 비춰본들 시커먼
먹통(오탁의 마음)을 끌어안고 있으니 뭐가 비치겠는가?
여러분은 오탁악세에 있으면서 공부해보자고 온 분들인데,
그걸 안하면 점점 더 무명의 철추가 되어서 점점 벗어날 길이 요원해진다.
점점 때묻은 방향으로 흘러가니까 점점 그놈이 굳어간다.
그게 굳어지면 거기서부터 별별 희한한 작난이 다 일어난다.
스스로 본인이 그렇게 고통을 받는다. 아주 무서운 것이다.
절에 와서 철야정진하고 용맹정진하고 결제철에 공부하고
하는 이것이 내 마음의 시커먼 먹통을 없애치우고 바로 부처님처럼
지혜와 광명을 얻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밖으로 행이 중요하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 수행하면 안된다. 앉아서만 공부가 되면 천년만년
바윗돌처럼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런 공부를 공부라고 할 수 있을까?
행주좌와 사위의, 일체 모든 곳에서 성성불매하게 참구해야 한다.
바다가 사방에서 들어오는 물을 받아 들이지만 오물은 받아들이지 않고 바닷가로
밀어내는 것과 같이 자성의 마음이 청정한 사람은 일체 침투를 받지 않는다.
남이 욕을 할때 같이 분심이 일어나는 것은 자성이 매해서 그렇다.
그걸 확실히 깨달은 사람은 여여(如如)하다.
말과 생각으로는 오만 것을 다 하지만 실지에 가서는
안 되는 것은 오탁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다.
그래서 절에서 참회도 하고 불기 닦거나 후원에서 봉사하고 하는
실천행을 함으로서 밖으로는 복과 덕을 짓는 것이 되고,
안으로는 오탁의 마음을 격파해서 자기 자체
(몸이 따로 있고 마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그대로가 순수한 자성법신이 된다.
중생의 본질이라는 건 아무리 글을 많이 배우고 박사가 되어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게 오탁악세의 본질이다. 오탁악세의 본질을
나라고 끌어안고 재산을 삼고 있으니 아무리 해도 법문이 들어가지 않는다.
매일 ‘무엇이지?’ 물어서 모르면 때리고 하면 지금 공부하는 것 보다는
굉장히 성과가 빠를 것이다. 그런데서 중생의 본질의 그릇이 깨진다.
나는 행자때 그렇게 다뤄졌다. 여지가 없고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잘했어도 ‘너 잘못했잖아!’ 하면 ‘예 잘못했습니다!’ 하고 참회했다.
싹 밟아 문대서 깨 주는 바람에 행자 때 한소식을 하였다.
지금은 누구 터치 안받으려고 하고 싫은 소리 안들으려고 그러니 기가 차는 거다.
달콤한 소리 해주면 그게 좋아서 ‘관세음보살 같으네요’
‘참 복을 많이 짓고 잘 하십니다’ 하면 좋아라 하지만 그거 한마디
들으면 그동안 지은 복이 싹 없어진다는 거다. 이게 참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비위를 안맞춰서 가버리면 안되니 살살 비위 맞춰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데, 비위 맞춰주는 공부를 하니까 비생산적이라 생산되는 게 없다.
안하는 것 보다는 좀 낫겠지.(웃음) 이게 현실이다. 이건 아니라는 거지.
운문스님이 시자에게 매일 ‘무엇인고?’ 물어서 모르면 때리고
‘임마! 아직도 해결 못했어?’ 이렇게 삼년동안 맞고 나서 깨달았다.
그런 근기가 되어 있어야 되는데 지금은 그런 터치를 안받으려고 한다.
세상의 무슨 개똥같은 민주주의 끌어다가 자꾸 되지도 않는 소리나 하고.
그 세상의 민주주의라는 건 중생의 세계, 중생의 본질을 긍정하는 거다.
세상의 민주주의는 중생의 때 묻은 나라는 생각을 가진 견해를 긍정해 주고
살려주는 거다. 그건 중생의 본질은 고칠 길이 없다.
그런걸 오늘날 이 시대에 스님들도 몰라서 민주주의가 어떻고 이런 소리하는
이가 있는데 기가 차는 거다. 부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해서 중생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정리하게 해줘야 되는데 그거는 못하고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한다.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고
올바로 보는 것도 아니고 올바로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자신을 바로 봐야 된다.
그렇다면 다른 길이 없다. 화두일념 밖엔 없다.
화두일념에 의해서 중생의 본질이 무너진다.
이 법도량에 온 건 잘한거다. 사회에 있으면 이런 말 듣겠나? 여기 오니까 듣는다.
법문 듣는 건 큰 인연이고 복이다. 듣고 공부해야겠다는 발심을 하는 거다.
- 대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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