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14세기경 일본, 무더운 여름날 수양버들이 늘어진
냇가에서 웬 여인네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 마침 마을 어귀를 돌던
이 큐一休 선사(1394~1481) 눈에 이 목욕하는 여인이 들어왔다.
스님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목욕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삿갓을 벗어 놓고 여인을 향해 세 번 절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멀찌막이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었다.
"아니 스님, 어찌 존귀하신 스님께서
목욕하는 하찮은 마을 아낙네에게 절을 하셨습니까?
"하찮다니요. 그건 여러분이 잘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성은 세상 모든 존귀함을 다 갖춘 보물창고입니다.
존귀한 불법을 설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해서
달마대사도 모두 이 여성 몸에서 나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이나 나 또한 모두 여성에게게서 태어났습니다.
하늘과 땅이 열린 이래 나무나 바위 뿌리에서 태어난 이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성은 우리 고향입니다. 여성은 불법佛法을 나누는 보물창고입니다.
그 신성한 몸이 보이기에 예를 갖춰 절을 올린 것입니다."
여성을 가축보다도 못하게 여기던 시절 석가모니 부처님은 여성을 존중했고,
스님으로 받아들였다. 이 같은 행동은 마을에 내려가 탁발托鉢하는 처지에
있던 석가모니로써는 맞아죽거나 굶어죽을 각오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큐 선사 역시 일본에서 여성을 소유물로밖에 취급하지 않던 그 시절, 여성한테
절을 해 생명을 낳고 보듬어주는 여성이 지닌 존귀함을 넌지시 일깨워 준다.
절!
그것은 나를 더할 나위없는 바닥까지 낮추어 너를 존중하는
가장 순수하고 고결한 행위다. 절은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다 신성함을 온몸으로 나타내는 절절한 표현이다.
2000년대 초 어느 법석에서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회 자리에서 삼배를 받을 때마다 부끄럽고 부끄럽다고,
절을 받을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말씀을 덧붙여서······.
그리고 그다음 법석.
스님께 법을 구하는 청법가가 끝났는데도 스님은 법상에 오르지 않고
그냥 서 계셨다. 법회식순에 따라 청법가를 마치면 법사 스님은
마땅히 법상에 오르셔야 하는데, 스님이 그저 서 계신 것이다.
진행자로서는 참으로 난처하고 딱한 일과 맞닥드렸다.
잠시 적막이 흐르고······,
'어쩌지?'
바로 그때 지난 법회에서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머리를 때렸다.
법회에서 절을 받을 때마다 부끄럽고 부끄럽게 여긴다는 말씀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쩔쩔매다가 궁리 끝에 나온 말이,
모두 자리에 앉으십시오." 였다.
사부대중이 모두 자리에 앉은 다음, "입정에 들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스님은 죽비소리에 맞춰 입정을 마친 뒤에야 법성이 오르셨다.
"어쩐다?' 스님은 절을 받지 않으시려고 하시지만
그냥 넘어가서도 안 될 일. 짧은 시간 궁리 끝에 나온 멘트가 아주 궁색했다.
"스님께 삼배를 올려야 하지만 자리가 비좁은 관계로
앉은 자리에서 합장 반배로 삼배를 올리겠습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법문을 미치시고 산회가가 울린 뒤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몰랐다.
'내가 제대로 한 걸까?'
그다음부터 스님 법회 진행을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머리를 떠도는 물음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이다.
법정 스님은 그렇게 법석에서 대중과 함께 합장 반배로 삼배를 나누신다.
맞절! "맑음은 개인이 청정함을,
향기로움은 그 청정이 사회에 널리 퍼지는 메아리를 뜻한다."고
늘 말씀하시는 스님은 진흙 속에서도 한 점 티없이 맑고 향기로운
연꽃이 피어나듯이, 혼탁한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그 연꽃처럼
'맑고 향기로운 존재라는 깨우침을 주는 맞절을 하고 계신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그렇게 사시는 스님은
말없는 말씀으로 물이 논에 들어가서 벼를 빛나게 하고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빛나게 하는 것처럼, 당신을 낮추어 우리를 흔들어 깨우신다.
법정스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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