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산중의 바깥식구들

갓바위 2023. 12. 11. 09:55

 

산중의 바깥식구들

내가 사는 산중의 농부들은 새나 곤충, 산짐승을 바깥식구라고 부른다.

바깥식구들이 가장 고생하는 시기는 겨울의 끝자락인 해동머리다.

이때가 되면 산새들의 먹이인 떫은 명감나무

붉은 열매마저 산자락에서 보기 힘들어진다.

 

밤나무 우듬지에 구멍을 뜷고 살던 날다람쥐는 아예 이사를 가고 없다.

산방 옆 밤나무 숲에 뒹굴던 밤톨들이 진작 떨어지고 없기 때문이다.

사람 못지않게 봄을 기다리른 생명이 있다면 아마도 바깥식구들일 터이다.

 

해동머리라고 하지만 날씨가 갑자기 영하로 내려가면

바깥식구들도 자기 생존을 위해 무진장 애를 쓴다.

엊그제처럼 영하 10도 이하로 수은주가 떨어지면 산새 중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딱새가 어김없이 먼저 반응한다.

 

혹한을 피해서 처마 밑에 난 환기통을 통해 거실로 들어온다.

딱새는 무단침입이 미안한지 전등갓에 앉아 눈을 깜빡거리며 개인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언제나 나를 경계하는 고라니는 먹이를 찾아 산방

앞산자락까지 내려와 운다. 사람이나 산짐승이나 추우면 배가 더 고픈 법이다.

 

겁 없는 직박구리는 산방 툇마루에 놓아둔 늙은 호박을

부리로 쪼고 나서는 결국 씨까지 뻬먹고 있다.

바깥식구들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봄이 더 기다려진다.

 

산책할 때는 산길만 걷지 않고 일부러 개울을 건너보기도 한다.

겨우내 얼어붙곤 했던 개울물이 이제는 순하게 흐르는지 안부를 묻기 위해서다.

우수 무렵이 되니 개울물 소리가 돌돌돌 하고 들린다. 버들강아지

눈들도 한결 또록또록해졌다. 벽록당 터에서 듣는 솔바람소리가 한결 부드럽다.

 

'벽록蘗錄'은 수불스님께서 지어주신 호인데 어느 세월에 '당堂'이 들어설지

아득하기만 하다. 솔바람소리가 귀를 씻어주는 듯해

하루에 한두 번씩은 꼭 올라가보는 벽록당 터 산자락이다.

 

산중에 살면서 귀를 씻는다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할 분이 있을지 모른다.

신문이 들어오지 않는 산중이라 해서 지구별을 벗어나듯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산방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저잣거리의 온갖 소식들을 물고 온다.

 

손님들의 직업적 취향, 정치적 색깔에 따라 주제별로 전해주니

저잣거리의 이야기들을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방을 따뜻하게 하는 장작개비만도 못한 소식들이 더 많다.

 

장작개비는 제 몸을 태워 온기라도 전해주므로 문단 말석에

붙어 있는 작가의 냉소라고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산새를 모독하는 듯안 '진박타령'이 들려온다.

 

〈새타령〉을 패러디한 것인데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 내지는 주체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제발 또랑광대들의 행진이 아니기를 빌어본다.

 

그런다 하면 누가 보아도 한 식구인데 '새정치'를 하겠다고 서로 갈라져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상대하는 그 인사들의 품성이 정상적인지 묻고 싶다.

자칭 타칭 정치지도자들이 주고받는 말들은 예나 지금이나 가관이다.

 

참지 못하고 뱉어낸 독설은 배설과 다름없다.

침묵의 체로 걸거지지 않은 말은 소음이라 했다.

며칠만 지나면 만나게 될 바깥식구가 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이다. 산중에 살면서 얻은

경험칙인데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개구리들이 여기저기서 합창을 시작한다.

개구리의 첫 소리가 얼마나 청아한지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매화나무가 개구리의 간절한 첫 소리에 감응하여 화답하듯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것은 아닐까?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뒤,

 

비로소 깨어나 목을 튼 소리여서인지 절절하고 귀하게 들려주고 싶은

개구리의 첫 소리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내면에서 깊이 삭혀야만

듣는 이가 마음으로 공감하는 법이다.

법정스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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